파촉지역의 천부지국을 찾아서
촉도나 그 길의 험난함은 이백의 시 「촉도난」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실제로 촉도를 가본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촉도를 시로 묘사했던 또 한 사람의 저명한 당나라 시인이 있었다.
바로 당명황(唐明皇)과 양귀비(楊貴妃)의 비련을 장편시로 노래한 「장한가」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그 사람이다.
백거이는 자를 낙천(樂天), 호를 취음선생(醉吟先生) 혹은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하였으며, 산서성 태원(太原) 출신이다.
이백의 사후 10년, 두보의 사후 2년 무렵에 태어난 그는 30대 초에 이미 그의 명작인 「장한가」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에 대해 고려 때 실제로 촉도를 가본 적이 있었던 이제현(李齊賢)이 이의를 제기한 흥미로운 자료가 있어서 소개한다.
이제현은 충숙왕 3년(1316) 30세 때 원(元)의 수도 연경(燕京)에서 아미산(峨眉山)에 제사 지내는 사명을 띠고 촉의 땅
성도로 떠났었다.
『역옹패설(櫟翁稗說)』에 "연우(延祐) 병진년에 내가 봉명사신이 되어 아미산으로 제사 지내러 갔었는데, 조(趙)·위(魏)·주(周)·
진(秦)의 옛 지역을 거쳐 기산(岐山) 남쪽에 이르렀으며, 다시 대산관(大散關)을 넘고 포성역(褒城驛)을 지나서 잔도를 건너
검문으로 들어가 성도에 이르렀다."라고 한 뒤, "백낙천의 「장한가」에는 '쓸쓸한 찬바람에 누런 먼지 흩날리는데 구름다리
얼기설기 검각에 오르니 아미산 아래엔 행인도 적고 여린 햇빛에 깃발도 광채를 잃네.
(黃塵散漫風蕭索 雲棧縈紆登劍閣 峨眉山下少人行 旌旗無光日色薄)'라 하였는데, 이는 당명황이 성도로 행행할 적에 거친 곳을
말한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미산은 당연히 검문과 성도 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보건대 그렇지 않다.
뒤에 『시화총구(詩話總龜)』를 보고서 옛사람도 이에 대해 논하였음을 알았다. 아마도 백낙천은 서촉에 가보지 않았던 것 같다."
라고 했다. 그런 다음 이제현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此山從古有 此道幾時開
不借夸媧手 誰分混沌胚
天形旂尾擲 岡勢劒鋩摧
霧送千林雨 江奔萬里雷
班班穿薈鬱 矗矗上崔嵬
下馬行難竝 逢人走却廻
驚猿空躑躅 去鳥但徘徊
才喜晨光啓 俄愁暮色催
金牛疑妄矣 流馬笑艱哉
寄謝題橋客 何須約重來
이 산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이 길은 어느 때에 열렸는가
여와의 솜씨를 빌리지 않았다면
혼돈의 천지를 누가 갈랐으랴
하늘은 깃발 끝으로 조금 보이는데
산세는 칼날처럼 날카롭구나
안개는 숲마다 비를 뿌리고
강물소리는 만리 밖의 우레 같네
이리저리 울창한 숲 뚫고 들어가
뾰쪽뾰쪽한 봉우리로 올라가니
말에서 내려도 나란히 가기 어렵고
사람을 만나면 되돌아가야 할 판이네
놀란 원숭이들 하릴없이 머뭇거리고
날아가던 새도 빙빙 돌기만 하네
아침 햇살 겨우 비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둑어둑 저물려 하네
금우의 고사도 허망한 듯하고
유마도 운행하기 어려웠겠네
승선교에 시를 써 부친 손님에게 말하노니
다시 오려고 약속할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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