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경시
팔영(八詠) / 서거정의 시
주흘의 영사[主屹靈祠] 험한 산은
하늘 끝에 닿았고,
깎아지른 벼랑은 구름 속에 들어 있다.
만물을 윤택하게 함에는 비록 그 자취 없으나,
구름을 일으킴에는 공이 있다.
곶갑의 사다릿길[串岬棧道]
구불 기는 양의 창자 같은 길에,
구불구불 새 다니는 길 같은 것 기이하기도 하다.
봉우리 하나하나 모두 빼어나니,
그런 대로 말 가는 길이 더디구나.
창 밖의 오동나무[窓外梧桐]
솔솔 부는 바람이 잎사귀를 흔드는데,
이즈러진 달이 성긴 가지에 걸렸구나.
갑자기 내리는 한밤중 비에,
고향 생각을 어이하리.
뜰 앞의 버드나무[庭前楊柳]
영남에 그 많은 나그네가 꺾어 보내어
이제는 남은 것이 없으련만,
의연히 봄바람에 떨쳐지니
긴 가지는 짐짓 여전하구나.
푸른 벽에 빨간 단풍[蒼壁楓丹]
빨간 잎이 푸른 벽을 장식하니,
강산이 아주 딴판이로구나.
내가 온 때가 마침 늦은 가을,
이렇듯 좋은 경치 본 적이 없네.
그늘진 벼랑에 흰 눈[陰崖白雪]
겨울 깊어서는 얼음이 골짜기에 가득하고,
봄이 반 되면 물이 시내에 생긴다.
자연의 모습은 때에 따라 달라지는데,
인정은 늙어가며 어지러워진다.
오정의 종루[烏井鐘樓] 나그네 길
시름으로 잠 못 이루는데,
외로운 베갯머리엔 달빛만 비쳐온다.
어디가 한산(寒山)의 절이냐.
드문드문 울리는 종소리 한밤중에 들려온다.
용담 폭포[龍潭瀑布] 옥 같은 무지개
높다랗게 드리웠는데,
휜 눈은 산뜻한 맑음을 뿌려 준다.
날고 자맥질하는 술법을 묻지 말고,
변화의 신통을 알아야 하리.
서거정(徐居正) : 본관 대구(大丘), 자 강중(剛中), 호 사가정(四佳亭), 시호 문충(文忠)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냈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 등을 거쳐 1456년(세조 2)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457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1460년 이조참의 때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1464년 조선시대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다. 1466년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장원한 후 육조(六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다.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했으며, 또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國譯)했다. 성리학(性理學)을 비롯, 천문·지리·의약 등에
정통했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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