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에 관한 거의 모든 도록에서 간판스타처럼 등장하는 유물은 청자참외모양꽃병(사진·국보94호)이다. 이 꽃병은 인종(재위 1123~46)의 장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정식 학술 발굴에 의한 출토품은 아니지만 1916년에 총독부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에게 구입하면서 유물대장에 인종의 옥돌 시책(諡冊)과 함께 장릉출토라고 기록해 놓아 그 신빙성이 아주 높다. 또 일괄유물로 청자접시 5점 한 세트, 청자합, 청자받침대, 뚜껑있는 청자잔이 있는데 모두 이 꽃병과 똑같은 질의 우수한 청자이고, 숟가락과 젓가락, 청동내합과 옥돌외합, 청동인장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도굴꾼이 파냈다는 장릉의 위치는 당시에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기록대로 개성 서쪽 벽곶동(碧串洞)으로만 추정하였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이에 대해 조사했다는 보고는 없다.
이 꽃병은 과연 천하의 명작이다. 몸체는 여덟 개의 골이 파인 참외모양으로 야무진 볼륨감을 보여주며 목은 상큼하게 뻗어 올라갔다. 넓게 벌어진 입술은 꽃잎 모양으로 예쁘게 돌려 있으며 굽은 주름치마처럼 여러 갈래로 넓게 퍼져 안정감을 이룬다. 아름다운 형태미와 부드러운 질감에 빛깔은 전형적인 비색(翡色)이고 유색은 아주 맑으면서 은은하여 왕가의 유물다운 품위가 있다.
이와 같은 참외모양 꽃병은 원래 송나라에서 나온 것으로 고려에서도 크게 유행하여 강진 사당리 가마에서도 여러 도편이 발견되었고 중국 경덕진가마에서 제작한 비슷한 꽃병이 개성에서 출토된 바도 있다. 그러나 다른 참외모양 꽃병들은 대개 목이 짧고 몸체가 뚱뚱하며 굽도 낮아 양감은 풍부하지만 둔중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반해 이 꽃병은 아주 늘씬하고 상큼하며 무엇보다 기품이 넘친다. 즉, 국제양식을 받아들여 고려적으로 멋지게 세련시켜 재창조해낸 것이다. 마치 서양의 대중문화를 우리식으로 세련시켜 K-pop을 만들어낸 것과 같은 국제성과 민족성이 동시에 들어 있는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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