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이 국새를 통해 주변부 국가를 외교적으로 컨트롤하였다. 고려는 요, 금, 원, 명에서 금인을 받아 국새로 썼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돌려주고 새 국새를 받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종 3년(1403년)에 비로소 '조선국왕지인'이라는 금인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의 국왕들은 이 도장을 중국과의 외교 문서에만 사용하고 국내 문서용 국새는 따로 제작해 사용했다. 임금의 명을 적은 교지(敎旨)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임금의 뜻을 내린 글에는 유서지보(諭書之寶), 과거 관계 문서에는 과거지보(科擧之寶)라는 인장을 사용했다. 정조 때는 왕이 지은 글에 규장지보(奎章之寶)라는 도인을 찍었다. 그리고 일본과의 외교 문서에는 별도로 소신지보(昭信之寶), 나중에는 이덕보(以德寶)라는 인장을 사용했다. 이 국새는 도승지 책임하에 상서원(尙瑞院)에서 관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