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25] 어보(御寶)

yellowday 2011. 9. 9. 08:19

조선왕조는 기록문화에서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조선왕조의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는데 이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기록유산이자 뛰어난 공예품이 어보(御寶·사진)이다.

어보는 왕실에서 제작한 의례용 도장이다. 예를 들어 왕세자로 책봉되면 '왕세자인', 왕비로 받아들여지면 '왕비지보'라는 도장을 만들어 주었다. 또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가 내려지거나 돌아가신 후 시호(諡號)를 올리게 되면 그 공덕을 칭송하는 글을 새긴 어책(御冊)을 함께 제작하여 바쳤다. 그리고 왕과 왕비가 돌아가시면 이 어보를 종묘의 당신의 신실(神室)에 보관하였다.

기록상으로 조선왕실에서는 366과(顆)의 어보를 제작하였다. 그중 323과가 전해지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316과, 국립중앙박물관에 4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2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1과, 그리고 미국에 유출되었던 것을 문화유산국민신탁법인이 최근에 구입하여 문화재청에 기탁한 1과 등이며 나머지 42과는 아직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어보는 기본적으로 거북이나 용 모양의 손잡이에 끈이 달려 있는 도장으로, 대개 높이 9㎝, 무게 4㎏으로 옥돌로 만들거나 은과 구리를 섞어 만든 다음 금으로 도금하였다. 도장에 새긴 글자는 적게는 4자, 많게는 116자에 이른다. 이 어보는 보자기에 곱게 싸서 내함에 넣고 내함을 다시 보자기로 싼 뒤 외함에 넣고는 한약재로 된 방충제를 넣어 자물쇠로 잠갔다. 때문에 하나의 어보에는 도장 이외에 내함, 외함, 자물쇠, 그리고 3개의 보자기와 끈으로 구성되었다.

이 어보 일괄유물은 한결같이 제작연대를 명확히 말해주는 뛰어난 금속공예품이고, 목칠공예품이며, 직조물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공예사의 흐름을 완벽히 보여주는 어보가 300여 점이나 남아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조선왕조의 궁중 문화유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