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26] 대한제국 국새(國璽)

yellowday 2011. 9. 9. 08:20

국새(國璽)는 왕명과 외교 문서에 찍는 인장으로 국왕의 상징이다. 국새를 이어받았다는 것은 곧 왕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뜻이다. 진시황이 국새를 화씨옥[和氏璧]으로 만든 뒤 옥새(玉璽)는 황제의 상징으로 되었고 왕의 국새는 금인(金印)으로 만들어졌다.

중국은 이 국새를 통해 주변부 국가를 외교적으로 컨트롤하였다. 고려는 요, 금, 원, 명에서 금인을 받아 국새로 썼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돌려주고 새 국새를 받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종 3년(1403년)에 비로소 '조선국왕지인'이라는 금인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의 국왕들은 이 도장을 중국과의 외교 문서에만 사용하고 국내 문서용 국새는 따로 제작해 사용했다. 임금의 명을 적은 교지(敎旨)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임금의 뜻을 내린 글에는 유서지보(諭書之寶), 과거 관계 문서에는 과거지보(科擧之寶)라는 인장을 사용했다. 정조 때는 왕이 지은 글에 규장지보(奎章之寶)라는 도인을 찍었다. 그리고 일본과의 외교 문서에는 별도로 소신지보(昭信之寶), 나중에는 이덕보(以德寶)라는 인장을 사용했다. 이 국새는 도승지 책임하에 상서원(尙瑞院)에서 관리했다.

1894년 갑오개혁 후 중국과의 사대 관계를 끝내면서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가 만들어졌고,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어새(皇帝御璽) 등을 새로 만들어 썼다. 그러나 1910년 조선왕조의 멸망과 함께 국새는 모두 분실되었다. 그리고 근 100년이 지난 2008년 12월, 문화재청은 미국의 한 수장가로부터 고종황제가 사용한 황제어새<사진>라는 국새를 구입하였다. 외함은 분실된 채 내함과 함께 입수된 이 국새는 전체 높이 4.8cm, 무게 794g으로 손잡이는 거북 모양이며 비단 끈이 달렸다. 그 형식 자체는 종묘에 전해온 300여 점의 어보(御寶·왕실 의례용 도장)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국새는 어보와 그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니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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