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모란(牡丹)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꽃의 왕'(花王)이라 불리며 왕실부터 민간까지 널리 사랑받아 왔다. 문헌상으로는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나타나며 고려 상감청자와 고려불화, 조선 분청사기와 청화백자에서 화려한 무늬로 장식되었다. 조선왕실에서는 대폭의 모란병풍을 만들어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와 종묘제례 같은 길례(吉禮) 때 사용됐다. 유득공은 '경도잡지(京都雜識)'에서 "궁중의 공식적인 잔치(公燕)에선 제용감(濟用監)에서 제작한 모란대병을 사용한다"고 증언했다. 이를 속칭 궁모란대병(사진, 부분)이라 부른다.
궁모란대병은 제법 많이 전해져 국립고궁박물관에만 수십 틀이 소장되어 있다. 대개 19세기 작품들로 그 도상이 비슷하다. 다만 장황(裝潢·표구) 자체가 18세기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만이 한 폭의 그림으로 되어 있어 왕조 말기에 와서 지금 보는 것과 같은 낱폭 연결 형식으로 고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8폭, 또는 10폭으로 구성된 궁모란대병은 폭마다 곧게 뻗어 올라간 서너 개의 줄기에 대개 아홉 송이의 활짝 핀 꽃과 세 송이의 꽃봉오리가 맺혀 있고 바닥엔 신비로운 형태의 괴석(怪石)이 놓여 있다. 꽃송이는 빨강·하양·노랑·분홍이고, 줄기는 갈색, 잎은 초록색이어서 오색이 현란하다. 장식적 기능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꽃과 꽃잎이 추상적으로 변형되었고 똑같은 그림이 동어반복식으로 펼쳐져 현대미술의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같은 공간 확대감이 일어나며 더없이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란대병은 민간에도 그대로 전래되어 수없이 많은 민화 모란병풍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민화 모란병풍들은 그 나름의 멋이 있기는 하지만 그림의 기량, 안료의 질, 스케일에서 궁모란대병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 그래서 유득공은 "사족(士族)들이 혼례 때면 제용감에서 제작한 궁모란대병을 빌려다 쓰기도 한다"고 했다. 궁모란대병은 조선시대 왕실문화가 낳은 대단히 아름다운 장식화이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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