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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통일신라 관청터, 경주 월성서 무더기 발견

yellowday 2016. 3. 31. 10:11

입력 : 2016.03.31 03:00

흙으로 만든 벼루 50여점 출토

동물 얼굴 모양이 새겨진 벼루 다리 조각 사진
동물 얼굴 모양이 새겨진 벼루 다리 조각.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의 '천년 궁성'인 경북 경주시 인왕동 경주 월성(月城·사적 제16호)에서 문서를 작성하는 관청터로 추정되는

8세기 중반 무렵의 건물터가 무더기로 확인됐다. 건물터에선 흙으로 만든 벼루 조각이 50점 이상 쏟아져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3월부터 본격 발굴 조사 중인 월성 유적의 중앙 C지구에서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통일신라 후기 건물터군(群)을 찾았다며 30일 현장을 공개했다. 동서 51m, 남북 50.7m의 정사각형 모양이며, 담장으로 둘러싸인 터 안팎에 건물 14개가 배치돼 있었다. 처음엔 담장 안팎에 길이 36m(정면 16칸, 측면 2칸) 규모의 대형 건물 등 6동을 먼저 지은 뒤 후대에 동쪽·서쪽 담장을 허물고 8동을 증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인화문(도장무늬) 토기, 국화형 연꽃무늬 수막새 등이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8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된다"고 했다.

특히 건물터에선 흙으로 만든 벼루(토제 벼루)가 50점 이상 출토됐다. 동물 얼굴이나 다리 모양을 새긴 벼루 다리 32점이 포함돼 흥미롭다. 월성 주변에 있는 안압지, 분황사에서 나온 토제 벼루보다 훨씬 많은 양이 출토돼 이 일대가 문서를 작성하는 행정 관청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또 C지구 안에서는 '정도(井桃)'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 토기가 새롭게 출토됐다. '전인'은 궁궐 부속 관청인 와기전(기와나 그릇을 굽던 관아)에 소속된 실무자, '본'은 신라 정치체제인 6부 중 하나인 ' 본피부', '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전인'이란 글자가 처음 확인돼 주목된다. 지금으로 치면 주무관쯤에 해당하는 말단 공무원"이라고 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은 4~9세기에 왕궁 또는 관련 시설이 있었고 신라가 멸망한 뒤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