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9.24 07:14
추석은 음력 팔월 보름을 말한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수확을 감사하는 명절로, 신라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명절로 여겨진다. 매년 가족·친척이 모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매년 다른 모습으로 추석은 지나갔다.
우리에게 그 해 추석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진으로 정리해봤다.
1970년대부터는 실향민들의 합동 추석 망향제가 열리기도 했으며, 1975년 추석부터는 조총련계 재일교포가 성묘를 하기 위하여 모국을 방문하였다.
추석제(Moon Festival)를 열어 주한 외교사절단 및 외신기자들에게 우리 고유 명절을 소개하고 체험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였다. 사진은 1978년 추석제다.
1984년 추석을 앞두고 고속버스 표 구하는 사람들이 임시 예매소가 마련된 여의도 한강 둔치에 길게 줄지어 섰다.
표 구하기 경쟁은 전쟁처럼 치열했다. 방송사 기자를 사칭해 청원경찰을 인터뷰하고 차표를 요구하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도 있었다.
1987년 추석 연휴도 마찬가지다. 귀성객들이 서울역 광장에 가득 모여 있다. 자가용이 많지 않았고,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어서
지금처럼 연휴에 외국으로 떠날 수도 없었던 시절, 추석때마다 되풀이되던 광경이다.
1993년, 극심한 정체를 참다못해 귀성객들이 시동을 끄고 차밖으로 나왔다. 그 해 추석은 1400만명이 관람한 대전 엑스포와 겹쳐
최악의 정체를 빚었다. 1996년엔 추석 열흘 전 북한 특수요원을 태운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에 좌초하는 일이 있었다.
작전 지역인 강원도 일대에서는 총 든 군인들 앞에서 성묘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맞은 1998년 추석은 우울했다. 그 해 ‘민족 대이동’때 시골의 부모님이 자식들 보러 서울로 올라오는
‘역귀성’이 크게 늘었다. 힘든 자식들 생각하는 부모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현상이었다.
가을 태풍으로 추석 때 물난리가 나기도 했다. 가장 빠른 돌풍을 동반했던 2003년의 ‘매미’는 부산항에 집채만한 파도를 몰고 왔다.
2004년엔 KTX 개통으로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 그 해 추석에 처음으로 명절 특별 열차의 인터넷 예매를 받았다. 귀성객이
예매 사이트에 대거 몰리면서 접속 불능 등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기차역 예매 창구는 예년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개천절 샌드위치 휴일까지 포함해 최장 9일의 징검다리 연휴였던 2006년은 어땠을까. 인천공항은 추석 연휴를 맞아 해외로 떠나려는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2009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추석 직전에 시작돼 연휴 하루 전인 10월1일까지 이어졌다. 온 나라가 귀성 준비로 들떠 있을 때,
이산가족들은 반세기만에 만난 혈육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하며 눈물을 쏟았다.
◇본지 지면으로 되돌아보는 추석
[출처] 추석특집 '예전엔 그랬지'|작성자 라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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