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에 대한 악몽
1962년 6월 내가 어렸을적!
그래도 대강은 돌아가는 낌새를 추측할 수 있을 나이 즈음에
어느날 갑자기 단행된 화폐개혁은 우리집 재산을 거의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우리 가족은 부산 초량동 국군통합병원? 근처에서 살다가 시골 외가로 피란을 갔었다.
외할머니께서 집터를 주셔서 그자리에 집을 짓고 그만 눌러 앉아 살게 되었다.)
그 때만 해도 시골엔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없었기에 아버지께서 벌어 보내주신 돈을
어머니께선 우리가 모르는곳에 차곡차곡 모아 두고 계셨나보다.
그러다 필요한 사람들한테 빌려주기도 하고~~~
그 때의 개혁은 화폐가치를 10 :1로 줄였는지 천환이 백원이 된것 같았다.
그런데 정부에서 100%의 환금을 해주지 않고 일정액만 바꾸어 준것 같다.
그리고는 빌려준 돈도 받지 못하게 하고 모두 탕감을 해주어야 했던것 같고...(빚을 진 사람들은 좋아서 난리가 났었다.)
어머니께서 휴지조각이 된 돈더미를 마당에 쌓아놓고 불을 태우며 우시는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웠지만,
(어린 마음에 나도 겁이나 그 몇장 감추어 두지도 못했다.)
숨겨 놓으면 나라에서 조사를 나올까봐 지레 겁을 먹고 다 태워 버렸다.
잡혀 가 조사 받고 감옥에 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 혼란한 시기였기에...
* * *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그 때는 농주를 담가 먹던 시절이라 양조장의 밀사?들이 떴다하면 온 동네가 부르르 떨었다.
쐬꼬챙이를 든 鼠生들이 마치 빨치산처럼 시골마을을 뒤지고 다녔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술익는 냄새가 진동을 하니 어찌 발각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는 기관총처럼 무섭게 생긴 쇠꼬챙이로 두엄 무더기며 짚단 벼늘을 무법자처럼 들쑤시고 다녔으니...
이런 억압된 사회상이 이승만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100환?권 지폐에 그대로 옮겨져
감춰놓고는 도저히 못배길 무섭고 공포스런 환경이 조성되었던것 같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인근에 나오는 논밭을 부지런히 사 두셨기에 우리가 자라고 교육 받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요즘 화폐개혁에 대한 말들이 솔솔 물안개처럼 피어 오르는것 같아
예전의 악몽이 떠올라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오만원권이 유통이 다 되지 않고 지하로 숨어 버리는것 같아 무슨 대책이 있긴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어찌됐건 애먼한 서민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 후에
단행 되었으면 하는 조심스런 바램이다.
지난 기억들 6. 15'9/19 yellow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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