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오는 날 손님이 와서
寒林搖落脫 (한림요락탈)
時序又深秋 (시서우심추)
倚枕空千慮 (의침공천려)
開樽散百愁 (개준산백수)
棲雀知時隱 (서작지시은)
賓鴻得氣浮 (빈홍득기부)
客來頗慰意 (객래파위의)
歸屐雨聲收 (귀극우성수)
한림에 낙엽이 지니
시절은 또 깊은 가을 되었네
베개 맡에 부질없는 생각도 많더니
술잔을 대하니 온갖 근심 사라지네
깃든 새는 때가 되면 숨을 줄을 알고
날아 온 기러기는 기운 나서 떠 다니네
손님이 와 자못 위로가 되니
비라도 그치거든 돌아 가시오 ....yellowday
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아정유고 3
이덕무(李德懋.1741.영조 17∼1793.정조 17) 의 생애와 업적
조선 후기의 실학자. 본관 전주(全州). 자 무관(懋官). 호 형암(炯庵)ㆍ아정(雅亭)ㆍ청장관(靑莊館).
정종(定宗) 별자(別子) 무림군(茂林君)의 후손. 통덕랑(通德郞) 성호(聖浩)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얼(庶孼) 출신으로 빈한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박람강기(博覽强記)하고 시문에 능하여 젊어서부터 이름을 떨쳤다.
홍대용(洪大容)ㆍ박지원(朴趾源)ㆍ성대중(成大中) 등과 사귀고 박제가(朴齊家)ㆍ유득공(柳得恭)ㆍ이서구(李書九) 등과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시집을 냈으며 이것이 청나라에까지 전해져서 이른바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규장각에서 <국조보감(國朝寶鑑)> <대전통편(大典通編)> <무예도보(武藝圖譜)> <규장전운(奎章全韻)>
<송사전(宋史筌)> 등 여러 서적의 편찬 교감에 참여하였으며, 많은 시편(詩篇)도 남겼다. 서울 지도인 <성시전도(城市全圖)>를 보고
읊은 백운시(百韻詩)가 정조로부터 '아(雅)'라는 평가를 받아 호를 아정(雅亭)이라 새로이 칭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검서를 겸한 채 외직에도 나가서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 등을 거쳤으며
1791년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가 되었다가 <홍문관지(弘文館志)>를 교감한 공로로 적성현감(積城縣監)에 제수되었다.
1793년 병들어 돌아가자, 3년 뒤 그의 재주를 아끼던 정조가 내탕전(內帑錢) 오백 냥을 하사하여 문집 <아정유고(雅亭遺稿)>
8권 4책을 간행하게 하였다. 문자학(文字學)인 소학(小學), 박물학(博物學)인 명물(名物)에 정통하고, 전장(典章)ㆍ
풍토(風土)ㆍ금석(金石)ㆍ서화(書畵)에 두루 통달하여, 박학(博學)적 학풍으로 유명하였다.
따라서 북학을 고창하지는 않았으나 명(明)과 청(淸)나라의 학문을 깊이 이해하고 고염무(顧炎武) 이래 청조 고증학의
성과를 수용하여 실질적으로는 북학을 함으로써 후배들의 청조 고증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저서로는 이만운(李萬運)의 책을 보완한 역사서 <기년아람(紀年兒覽)>, 사(士)의 윤리와 행실을 밝힌 <사소절(士小節)>,
고금의 시화(詩話)를 수록한 <청비록(淸脾錄)>, 명나라 유민(遺民)의 인물지인 <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 등 십여 종이 있고,
이들은 <아정유고> 등 문집과 함께 아들 광규(光葵)에 의해 망라되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71권 33책으로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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