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200년 만에 되살렸소, 조선의 비단 꽃

yellowday 2014. 4. 7. 17:15

입력 : 2014.04.07 03:01 | 수정 : 2014.04.07 09:49

[순조 때 쓴 장식용 가짜 꽃 '채화'… 황수로 교수 3년걸려 재현·전시회]

비단을 두드리고 자르고 묶어 한 송이 만드는 데만 보름 걸려
"송홧가루·꿀 일일이 묻혀 만드니 진짜 벌과 나비 날아들기도 하죠"


	채화를 가까이서 찍은 것. 비단을 두들겨서 만든 꽃잎과 송홧가루와 꿀로 만든 수술까지 대단히 정교하다
채화를 가까이서 찍은 것. 비단을 두들겨서 만든 꽃잎과 송홧가루와 꿀로 만든 수술까지 대단히 정교하다. /일맥문화재단
손으로 일일이 자르고 묶고 두들겨 만들었다는 희고 붉은 오얏 꽃잎이 투명하다. 벌과 나비, 무당벌레, 봉황과 공작새가 꽃나무 구석구석 숨어 있다. 바람이 살짝 불 때마다 벌과 나비의 날개가 파르르 떨린다. 고개가 아프도록 찾아봐도 어느 한구석 같은 데가 없다.

조선 순조(1790~1834)의 기축년 궁중 잔치에 사용된 꽃항아리(花樽·화준)로, 국내 최고의 채화(綵花) 장인 황수로(78) 동국대 종신석좌교수가 3년에 걸쳐 재현해 완성한 것이다.

조선왕실을 장식했던 채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채화란 궁중의 연희나 의례 때 장식용으로 썼던 가짜 꽃을 일컫는다. 8일부터 5월 2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에서 열리는 '조선왕실공예특별전―아름다운 궁중채화'.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인 황 교수가 지휘한 전시다. 황 교수는 "우리 옛 궁중에선 살아 있는 꽃 단 한 송이도 꺾는 법이 없었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에서였다. 장식용 꽃은 모두 직접 손으로 만들어 썼다"고 했다.

황 교수는 채화의 시작을 고려 공민왕(1330~1374)에서 찾았다.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공민왕은 노국공주가 살아생전 좋아했던 모란꽃을 채화로 만들어 방에 꽂아두고 온종일 봤답니다. 그때부터 우리 전통 채화가 발달한 것이지요."

임금이 군신에게 내렸던 꽃 '사화(賜花)', 머리에 꽂는 '잠화(簪花)', 잔칫상에 올리는 상화(床花), 궁중악가무 정재를 장식하는 의장화(儀仗花), 채색상에 올리는 지당판(池塘板) 등도 채화다. 모두 고려 능견 같은 고급 비단과 옥양목이나 영포 같은 최고급 천연섬유로 만들었다. 황 교수는 "우리에게도 이런 찬란한 문화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에 50년 넘게 채화에만 매달렸다"고 했다.

황수로 교수가 만든 화준에는 피지 않은 꽃봉오리부터 만개한 꽃까지 수만 송이가 들어간다. 여기에 온갖 벌과 나비, 봉황까지 얹어 하나의 우주를 완성한다. 황 교수는 “조선시대 왕의 꿈과 포부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꽃은 모두 손으로 비단을 일일이 자르고 묶어서 완성한다. 한 송이를 만드는 데 꼬박 보름이 걸린다. 비단을 홍두깨로 계속 두들기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 작업을 거쳐야만 꽃의 광택이 자연스럽게 살아나고, 송이가 입체적으로 보인다.

황 교수는 "이 기술을 홀로 깨치는 데만 20년이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수술은 한 가닥 한 가닥 모두 송홧가루와 꿀을 묻혀 만든다. 황 교수는 "실제로 이 향기를 맡고 진짜 벌과 나비가 날아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조선왕조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진연(進宴)을 선보였다는 1829년 순조 즉위 30년과 순조 40세 생일 기축년 진찬(進饌)에 쓰였던 각종 채화를 그대로 재현한다. 밤에 내명부와 외명부가 다 같이 참석해 벌였다는 호화로운 잔치, 야진찬(夜進饌)의 풍경도 볼 수 있다.

프랑스 장인과의 '기술 대결'도 벌인다. 프랑스 궁중 왕실에 쓰였던 비단 꽃을 제작해온 르제롱(Legéron) 가문의 자손 브루노 르제롱이 황수로 교수와 함께 나란히 서서 궁중 채화 만드는 법을 8일(국립고궁박물관), 10일(부산문화회관) 각각 시연한다. 문의 서울 (02)3701-7500, 부산 (055)366-0036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