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독서 삼매경] 感情을 읽는 두 권의 책
자살·성형·악플… 그 뒤엔 낮은 자존감
외모 콤플렉스도 자존감에 영향, 키 작은 사람이 공격 성향 더 강해
자신의 존엄성훼손하지 않으려면 타인의 인격부터긍정하고 헤아려야
[孔子가 말한마음의 못 빼는 법]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맹자'에는 공자가 이 동요를 인간의 자기형성에 비유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물이 먼저 흐려진 다음에 누군가 와서 발을 씻는 것처럼, 내가 먼저 나를 업신여기면 남도 나를 푸대접한다." 모멸감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바로 서고, 자존감이 굳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중년 남자가 펄펄 뛰며 성을 내고 있다. 얼굴 가득 경멸과 혐오의 열꽃이 핀다. 압력솥이 김을 뿜듯 요란하게 욕설이 쏟아지는 풍경. 보기 안쓰러운데 웬걸, 점원은 담담하다.
영화에서 1000만 관객이라는 숫자는 이 세상에 대해, 거기 사는 사람에 대해 말해준다. '겨울왕국'이 흥행한 배경 중에는 사회적 감정도 있지 않을까. 엘사는 "숨겨라, 느끼려 하지 마라,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는 강박에 짓눌려 있다. 감정노동이다. '렛 잇 고(Let It Go)'는 그것을 훌훌 털고 자유를 노래한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가 쓴 '모멸감'(문학과지성사)과 곽금주 서울대 교수의 '마음에 박힌 못 하나'(쌤앤파커스)는 감정이라는 블랙박스를 연다. 감정은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지만 내 마음조차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높은 자살률, 성형 수술, 악플…. 김찬호 교수는 "이런 정황 아래에는 낮은 자존감이 숨어 있다"고 진단한다. 곽금주 교수는 못난 모습, 즉 콤플렉스(열등감)를 통해 '나는 누구인지' 묻는다.
◇헝그리 사회에서 앵그리 사회로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하며 위장에 능하다. 감정은 또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과거에는 범죄자를 처형할 때 군중이 구경했다. 지금 같으면 눈뜨고 못 볼 것을 축제처럼 즐겼다. 한국이 일군 경제적 성취는 경이롭지만 '피로사회' '불안증폭사회' '허기사회'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같은 책에 비친 우리의 마음 풍경은 사뭇 음울하다. "헝그리 사회에서 앵그리 사회로 넘어왔다"는 해석도 있다.
김찬호 교수는 "학력은 높아졌지만 지성은 쇠퇴하고, 수명은 길어졌지만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기는 힘들고, 경쟁력은 높아졌지만 사회적 부작용과 개인적 피로감은 견디기 어렵다"고 썼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조금만 건드려도 상처받고, 그 앙갚음으로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을 억누른다. 최근 문제가 된 감정노동이나 '디스(상대방의 허물을 공격해 망신주는 것)'는 그런 병리 증상이라는 것이다.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다. 응당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과민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비스업체 직원이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격앙하는 소비자,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하면 난감해하는 부유층, 하급자가 깍듯하게 떠받들지 않는다고 호통치는 상사…. 무시당했다고 느낀 그들은 자괴감을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한다. 모욕을 쉽게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게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다. '낮은 자존감'은 또 다른 모멸감을 확대 재생산한다.
◇콤플렉스, 또 하나의 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진은 어릴 때 키가 작았던 사람은 사교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자부심이 약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키 1인치(2.54㎝)마다 연봉 차이가 789달러 난다며 수치도 제시했다. 그런데 나폴레옹 콤플렉스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키 작은 사람들이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더 큰 지배욕을 갖는다는 점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송사리 연구에 따르면 다툼의 78%는 덩치 작은 물고기가 일으킨다. 패배의 아픔은 작고 승리의 기쁨은 크다면 싸움을 거는 게 낫다고 생각해 작은 사람들이 더 공격적인 성향을 띨 수 있다.
'마음에 박힌 못 하나'는 타고난 성(性)이 달갑지 않아 생기는 다이애나 콤플렉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성공을 회피하는 요나 콤플렉스, 사소한 억울함에도 목숨 걸고 보복하는 몬테크리스토 콤플렉스 등 18가지 콤플렉스를 소개한다. 유래와 원인, 내면의 심리를 신화와 문학을 통해 짚는다. 곽금주 교수는 "똑같은 상황을 겪어도 기억에서 벗어나 현재를 사는 사람과 과거에 붙잡혀 지금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콤플렉스를 스스로 병적인 것이라 낙인찍고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순간, 콤플렉스는 마음에 박힌 못이 되어버린다"고 썼다.
◇감정의 주인이 되는 길은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고용인구 1600만명 중 70%에 이르는 1200만명이 서비스업 종사자다. 감정노동자는 6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들은 피로감이나 짜증을 감추고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감정과 표현을 억지로 분리하는 '감정 부조화'가 노동자의 내면을 소진시킨다.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게 더 치명적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내 위신을 확인하려는 문화는 강하게 남아 있는 반면, 개인을 감싸주고 인정해주는 공동체는 급격히 붕괴했다. 일상은 흉흉하다. 저마다 분노의 화약고를 가슴에 쟁여 두었다가 신경질과 화풀이로 탕탕 쏘아대는 사회에 사람다움이 들어설 자리는 비좁다.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당하지 않으려면 타인의 인격부터 긍정해야 한다. '모멸감'에는 이 감정을 주제로 만든 10개의 곡(작곡 유주환)이 CD에 담겨 있다. 김찬호 교수는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감수성이 사회적 기풍으로 정착돼야 한다"면서 "내면이 강해져야 하고 결국 자존감의 문제"라고 말했다. 곽금주 교수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아는 사람은 그 '약한 고리'를 다독이며 다치지 않게 끌어안고 사는 것이 건강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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