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15 03:01
한국 첫 國展 대통령상 작가가 그린 변화무쌍한 자연
[왜 名畵인가] [24] 류경채 '양지'
류경채 선생은 1950년대 '스타 작가'였다. 그는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폐림지 근방'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실시됐던 조선미술전람회(선전)가 끝나고 우리 정부 주관으로 열린 첫 국전이었다. 당시 선생의 나이 29세. 그야말로 미술계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국전 출품작의 대부분은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경향이었지만, 몇몇 신세대 모더니스트들은 진취적인 조형 세계를 추구했다. 류경채 선생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선생이 1961년 서울대 회화과 교수로 부임했을 때, 나는 4학년이었다. 그는 늘 "술 마시고 그림 그리지 마라. 맨정신으로 그려도 될까 말까인데"라고 따끔하게 말씀하셨다. 카리스마 넘치는 교육자였지만 제자들에겐 늘 다정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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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경채의 1956년 작 ‘양지’, 캔버스에 유채, 세로100·가로194㎝. /개인 소장
선생의 대표작 '양지'(1956)는 류경채의 1950년대 자연시리즈 중에서 선생 고유의 기법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낮은 산등성이에 세 마리의 염소를 그렸는데, 다채로운 색채로 인해 화면은 더욱 추상적으로 보인다. 붓질은 빠르지는 않지만 격정적으로 처리돼 변화무쌍한 자연의 기운을 잘 살렸다. 날카로운 캔버스 나이프로 눈에 띄지 않게 긁고 덮어주는 기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를 드러낸 수작이다. 선생은 1960년대 서정적 추상에 이어 1970~80년대에는 기하학적 색채 추상으로 후기 전성기를 보여주었으며, 199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림을 그린 프로 작가였다. 제자들의 일자리까지 걱정하셨던 그분이 요즘 들어 더 그립다.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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