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건축 등 이탈리아 예술에 숨은 메디치 가문의 정권 향한 열망 추적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성제환 지음|문학동네|380쪽|1만9800원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자는 건물과 교회 수도원 곳곳을 장식한 아름다운 건축양식과 지천에 깔린 명화들에 감명받는다. 역사는 중세의 암흑을 뚫고 등장한 이 아름다움을 르네상스라 한다. 중세 1000년을 지배한 종교적 가치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로마 문예를 부흥하고, 성서와 교회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정신을 찬란한 예술로 표현한 시대. 이 책은 그 경탄 너머로 한 발 더 들어간다. 그곳에선 예술의 순수함을 벗은 욕망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피렌체를 무대로 새로운 정치 지배 질서를 꿈꾼 상인들의 열망이 있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당하고 세속적 정치권력에서도 배제됐던 고리대금업자들의 한과 욕망이 르네상스를 촉발하는 역사의 마술을 목격할 수도 있다.
◇피렌체, 르네상스 예술의 꽃을 피우다
서기 1200년대 초만 해도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을 사로잡는 피렌체 수도원의 벽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벽에 명화가 들어선 것은 당시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는 직업을 가진 고리대금업자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가 1244년 평신도라도 돈만 내면 수도원 지하에 매장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교황은 수도원과 예배당을 그림으로 장식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도 했다. 고리대금업자 엔리코 스크로베니는 아버지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 예배당을 건축하고 화가 조토에게 벽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조토의 명작 '최후의 심판'이 탄생한 배경에는 아버지의 지옥행을 막기 위한 고리대금업자 아들의 효심이 있었다. 조토는 이 그림에 스크로베니가 기사 작위를 사서 신분이 바뀌었음을 상징하는 십자가도 그려넣었다. 예수를 그리되 세속적 욕망을 담은 새로운 그림의 등장이었다.
◇메디치 가문, 시민을 위한 예술을 앞세워 정권 잡아
14~15세기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들은 가문의 영광을 뽐내기 위해 수도원 벽을 사서 그림을 그렸다. 피렌체의 정치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메디치 가문은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이용했다. 메디치 가문을 이끄는 코시모는 여타 상인들과는 정반대 길을 택했다. 코시모는 수도사 40명을 위한 독방에 도서관까지 갖춘 대형 수도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선물했다. 15세기 피렌체 건축의 대표작인 산마르코 수도원이다. 부유한 상인들이 주로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수도원에서 자기들만의 모임을 갖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피렌체 시민들과 인문학자들은 이를 계기로 코시모의 집권을 지지하고 나섰다.
-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와 마르스’(1483년). 그림에서 염소의 하반신을 한 소년들은 당시 피렌체를 지배한 로렌초 데 메디치와 고대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동시에 상징한다.
코시모는 화가 안젤리코에게 '산마르코 제단화'를 그려 수도원 내부를 장식하게 했다. 코시모는 이 그림을 성모마리아에게 바쳤지만 중앙제단 카펫 테두리에 메디치 가문의 문장인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 원을 새겨넣었다. 피렌체 시민들에게 이 선물을 누가 했는지 잊지 말라고 한 것이다.
◇새로운 통치 이념을 찾아 고대를 뒤진 인문주의자들
피렌체 인문학자들은 메디치 왕조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근거를 찾기 위해 그리스·로마 시대 고서(古書) 사냥에 나섰다. 인문학자들이 모여 담론을 나눈 플라톤 아카데미는 메디치 통치의 필연성을 연구하는 기관이었다. 그들은 고대 로마 최고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메디치 왕조를 찬미할 아이디어를 얻었다. 화가 보티첼리는 인문학자가 쌓은 지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가 신축한 카스텔로 별장의 벽화 '봄'에는 신을 경배하던 이전 그림들에 등장하지 않던 비너스와 큐피드, 플로라가 그려졌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통해 피렌체에 신이 아닌 인간이 통치하는 새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보티첼리는 이어 '비너스와 마르스'를 그렸다. 비너스가 그윽한 눈길로 마르스의 멋진 몸을 감상하고 있지만, 핵심은 그 옆에서 염소의 하반신을 한 소년들이다. 보티첼리는 로렌초와 아우구스투스가 같은 염소자리 별자리 태생이란 것을 암시함으로써 로렌초의 피렌체 통치를 찬미했다.
르네상스를 예술과 인문학에만 집중해서 보면 당시 상인들이 이 작품들을 통해 전달하려 한 메시지를 놓치기 쉽다. 현재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피렌체 상인을 통해 르네상스 예술의 의미와 그 이면에 깃든 시대정신에 대한 이해를 시도함으로써 르네상스 해석에 풍요를 더했다. 경제사와 예술사를 아우르는 멋진 통섭의 저술 사례라 할 만하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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