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16 03:02
[왜 名畵인가] [12] 변관식의 '단발령'
반도화랑에 근무했던 1960년대, 그림 배운다는 핑계로 일요일마다 돈암동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1899~1976) 선생 댁에 갔다.
선생은 가르쳐주지는 않으시고 자기 그림에 먹점만 찍고 계셨다. 안 그래도 시커먼 그림을 더욱 꺼멓게 만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경상남도 진주 태생이라는 사모님의 음식 솜씨에 감탄하며 주린 배를 채우고, 몇 년 동안 사군자만 그려보다가 끝났다.
1970년에 인사동에 현대화랑을 열었다. 다른 작가 그림은 더러 팔리는데 시꺼먼 색이 많은 소정 그림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선생은 저녁에 자주 화랑에
오셨다. 어떤 날은 사모님 몰래 나오시느라 신발도 없이 맨발로 시발택시를 타고 오셨다. "박양, 5000원만…." 그 5000원은 왕복 택시비와 소주 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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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관식의 1974년 작 ‘단발령’. 55×100㎝. /개인소장
"큰 화실에서 대작을 하는 게 소원"이라고 늘 말씀하셔서 1974년에 20여 점을 놓고 개인전을 열어 드렸다. 이때 이 그림 '단발령(斷髮嶺)' 등 주옥같은 작품이 몇 점
나왔다. 전시도 성황을 이루어 사시던 한옥을 팔고, 2층집을 구하셨다. 그러나 이후 2년간 대작을 한 점도 못 그리시고, 큰 병풍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돌아가셨다.
'단발령'은 해학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이다. 구름 대신 흰 공간을 속도감 있게 펼쳐놓아, 금강산 1만2000봉이 더욱 힘 있고 신비스럽게 보인다.
화면 아래쪽 오솔길, 두루마기를 입은 남정네 일곱 명이 팔을 휘젓고 바쁘게 가는 모습이 TV를 보듯 입체감을 준다.
산수화에서 달려가는 인물을 그린 건 아마 소정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분방한 자신을 표현했으리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조선시대의 가장 뛰어난 산수화가 겸재의 '금강산도'라면, 근현대의 으뜸가는 산수화는 소정의 금강산 연작이라 생각한다.
제자 김학수 화백의 말대로 "술과 산천과 그림 외엔 아무것에도 마음 두지 않았던" 소정. 선생님만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
소주만 안 드셨으면 오래 사셨을 텐데…. 많이 못 팔아드려 아쉽고, 죄송하다. 눈물이 난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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