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名畵인가] [3] 천경자의 '길례언니'
제목에 얽힌 사연을 모르면 온전히 감상할 수 없는 작품이 있다. 천경자의 '길례언니'를 나는 그냥 힐끗 지나칠 뻔했다. 참, 화려하구나.
붉은 꽃으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노란 옷을 입은 여인. 그녀를 둘러싼 대담한 원색에 어울리지 않게 촌스러운 이름이 붙었다. 길례언니.
초상화의 주인공은 소록도 나병원에서 간호부로 일하던 화가의 선배라니. 그림이 다시 보였다. 그것들은 환상의 꽃, 역설의 꽃이었다.
나병 환자를 돌보는 여인의 머리에 그처럼 아름다운 꽃을 얹어준 화가. 예술의 힘을 보여준 거룩한 정신 아닌가. 보통학교 시절의
교정에서 화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길례언니는 이후 천경자(89)의 인물화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여인'이 되었다.
- 천경자의 1973년작 ‘길례언니’. 종이에 채색, 가로 29㎝, 세로 33.4㎝. /개인소장
길례언니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을 나도 안다. 중풍으로 반신이 마비된 아버지, 뇌수술을 하고 온몸에 줄을 꽂은 어머니를 돌보던 간병인들은
한두 명의 고약한 경우를 제외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 텐데.
환자의 대소변을 치우고, 내 아비의 입에 죽을 떠 넣어준 요양보호사님들에게 꽃을 달아주지는 못할지언정, 고맙습니다, 말하고 싶다.
천경자 화백은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내가 감탄한 화가의 말. "한 많은 여인이 머리에 꽃을 얹는다." "아름다울수록 고독이 맺히고,
그 고독을 음미한다." 친구 천경자를 노래한 박경리의 시처럼 그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는 고약한 예술가였나. 조닷
[작품 보려면… ]
▲내년 3월 30일까지, 월요일은 휴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관람료 성인 6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초·중·고생 3000원, 부모 동반 초등학생 11월 29일까지 무료 www.koreanpainting.kr (02)318-5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