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4.26 09:53
설마 16세가 정년인 직업이 있었을까? 조선 시대 궁중에 정식으로 근무했던 관리 중에서 16세가 정년인 직업이 있었다. 액정서(掖庭署)라는 관청이 있었는데 그곳은 조선 시대 왕명의 전달 및 임금이 쓰는 붓과 벼루의 보관, 궁중의 자물쇠 관리, 대궐 뜰의 설비 등을 맡은 관청으로 태조 원년인 1392년에 설치되었다가 갑오경장으로 인해서 1894년 고종 31년에 폐지되었다. 액정서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왕명의 전달이었다. 임금을 시종하며 전갈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 일은 바로 15세 이하의 어린아이가 맡았다. 사극에서 "상감마마 납시오" 하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임금의 행차 때 길을 정리하고,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을 전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러다 보니 낭랑한 목소리가 생명이기에 변성기에 들어서면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바로 16세가 정년인 직업은 중금(中禁)이라는 관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몇 세를 정년으로 했었을까?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 시대 신라의 김유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후 최치원이 70세에 정년을 맞이했다는 기록이 있다. 관리가 70세가 되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 제도로 정착되어 이를 치사(致仕)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는 당상관으로 치사하는 경우 예조에서 매달 고기와 술을 급여했고, 국가의 중대한 정사로 말미암아 치사하지 못하는 70세 이상 된 1품 관에게는 궤장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보면 조선 시대에 관리는 70세가 정년이었다.
- ▲ 경복궁에서 열린 한 기념연회에서 '중금(中禁)'을 찾아보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근래 들어 퇴직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을 기준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건강 수명을 근간으로 정년을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평균 수명이 65세이고 평균 10년 정도의 노환 기간을 고려하면 55세가 건강 수명이라는 것을 근거로 정년을 결정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평균 수명뿐만 아니라 건강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현실과 숙련 근로자의 이탈로 기업의 경쟁력 약화 등의 사회 경제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년 연장의 문제는 정년 설정 이후에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공식적으로 논의가 마무리된 것은 지난 2011년 6월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의제는 정년 나이 60세가 목표였다. 당시 노사정은 중고령 인력의 점진적 고용 연장을 위해 노력한다는 선언적 내용의 합의문만이 채택되었고 이후 논의가 지속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6년 '신고령자고용안전법'을 통해서 60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였다. 바로 연금 재원의 부족을 5년 미루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스페인은 지난 2011년 67세로 정년을 연장하였고, 앞으로 2013년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퇴직 나이를 조정할 것으로 약속했다. 영국에서는 2006년 고용평등연령법이 제정되어 65세 정년이 확립되었다. 이에 앞서 1999년부터 50세 이상 근로자를 위한 취업제도인 '뉴딜 50플러스' 정책으로 고령화에 대응해왔다.
독일은 지난 2005년부터 법정 퇴직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여 2029년까지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또한, 2007년부터 '이니셔티브 50 플러스'라는 적극적 고령자 고용정책이 2007년부터 시행되었다. 프랑스에서도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60세였던 퇴직연령을 2018년에 62세까지 연장하도록 하였다.
고용연장 정년연장은 시대 간 계층 간 갈등 조정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가야 한다. 이처럼 선진국에서 사회적 갈등을 감수하면서도 정년을 연장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공통적인 이유는 국민연금의 문제 해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기업이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의 유연하지 못한 고용 시스템 기반에서는 선진국보다 더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을 환영의 태도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근로자는 일을 통해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데 정년 임박한 퇴직 예정자들의 근무 태도는 관리 수준을 벗어나 자유 방만하다는 불평을 낳거나 새로운 기술 습득과 정보 참여에 소극적이라는 일관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임금 피크제 도입으로 급여가 줄어들면 더더욱 일의 집중도와 성과에 대해서 열의를 보이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 고용주의 입장일 것이다.
나이라는 쉽고 계량적 근거를 일괄 적용하는 것이 사실상 무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에 궁극적인 정년 폐지와 고용 환경의 유연성을 추가로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시대 중금(中禁)은 16세에 정년을 맞이했다. 단지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변성이 되면 본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앞으로 정년 연장에 대한 고민은 정부가 주도해서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여건을 고려할 때 정년이 되지 않아도 그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대처와 정년이 되어도 더 오래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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