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1287호 지장삼존도(地藏三尊圖·사진)는 고려 불화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는 명작이다. 예배 대상으로서의 지장보살도가 아니라 회화적으로 재해석된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본래 지장보살은 지옥에 빠진 중생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하여 삭발한 스님이나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명부(冥府)의 세계를 주재하면서 염라대왕, 평등대왕 등 시왕(十王)을 거느리며 저승에 온 자를 49일간 심판하여 천상의 자리를 배정한다. 절에서 49재를 지내는 근거가 여기에 있으며 이 때문에 지장보살은 구복신앙의 대상으로 인기가 높았다.
대부분의 지장보살도는 독존상으로 표현되거나 20명이 넘는 권속(眷屬)들을 지장보살 무릎 아래에 밀집시킨 상하 2단 구도로 지장의 권위를 한껏 드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 지장삼존도는 많은 권속 중 오직 비서실장격인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 둘만 거느린 간명한 구성이고 고려 불화로서는 예외적으로 좌우 대칭에서 벗어난 동적인 구도를 하고 있다.
금강대좌 위에 반가부좌를 한 잘 생긴 스님 모습의 지장보살이 왼손에 여의주를 들고 있는데 그가 항시 지니고 다니는 고리가 6개인 육환장(六環杖)이라는 지팡이를 도명존자가 받들고 올려다보고 있다. 무독귀왕은 금으로 만든 경전합을 정중히 모시고 지장을 보필하고 있는데 화면 아래쪽에는 사자 한 마리가 혀를 길게 내민 채 넙죽 엎드려 있다. 무언가의 스토리텔링이 있다. 엄격하고도 경직된 것이 불교 도상 체계인데 어떻게 이처럼 능숙하게 구도를 변형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높이 1m의 이런 아담한 고려 탱화(幀畵)들은 사찰이 아니라 권문세족(權門勢族) 저택의 원당(願堂)에 모셔졌던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모든 유물은 그것의 생산과 소비 과정을 살필 때 그 예술적 가치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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