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71] 백제 왕흥사 사리함

yellowday 2011. 4. 5. 21:51

2007년 10월 10일 부여 백마강 건너편의 백제 왕흥사(王興寺)터에서 발굴된 사리함은 한국미술사의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금·은·동 한 세트로 동제함 속에 은제함, 은제함 속에 금제함이 차례로 들어 있었고 금제사리함 속은 맑은 액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동제사리함 몸체에는 '정유년 2월 15일 백제 창왕(昌王)은 죽은 왕자를 위하여 사찰을 세우고 사리 2매를 묻었는데 신묘한 변화로 3매로 되었다'라는 글씨가 새겨 있었다. 창왕은 위덕왕(威德王)의 생전 이름이고 정유년은 위덕왕 19년(577)이다. 사리의 변화를 말한 구절은 사리봉안기에 의례적으로 나오는 문구다.

백제 왕흥사 금·은·동제 사리함.

왕흥사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아주 애매하게 나온다. 법왕 2년(600) 정월에 '왕흥사를 창건하고 승려 30명을 두었다'고 했으면서 또 무왕 34년(634)에 '왕흥사가 창건되었는데 이 절은 물가에 임하여 짓고 채색이 화려하고 장엄했으며 왕은 늘 배를 타고 절로 들어가 향을 피웠다'라고 했다. 무슨 착오이거나 중창시기를 그렇게 기록한 것 같은데 이제는 왕흥사는 위덕왕이 577년에 세운 왕찰임이 분명해졌다.

금·은·동 사리함을 보면 한결같이 형태미가 아름답다. 동제사리함은 통형이고, 은제사리함은 긴 목이 달린 항아리 모양이며, 금제사리함은 구기자 열매 같은 예쁜 형태이다. 동제사리함은 소박하고, 은제사리함은 듬직하며, 금제사리함은 고귀한 모습이다. 세 사리함의 형태는 그렇게 다르지만 뚜껑에는 모두 봉곳한 꼭지가 달려 있어 한 세트로서의 통일성을 갖추었다.

아무리 보아도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이라는 느낌을 주면서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았다'는 백제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이 사리함은 백제사람들이 이제까지 고분에 쏟던 예술적 열정과 기량을 불교미술로 옮겼다는 미술사적 의의를 갖는다. 바야흐로 왕을 위한 금관의 시대에서 절대자(부처)를 위한 사리함의 시대로 전환했음을 실물로써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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