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65] 한 아방가르드의 죽음

yellowday 2013. 1. 5. 08:21

이브 클라인의 행위미술 장면.

관습이나 금기를 깨뜨리고 자신의 행동이나 표현이 그 시대에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새롭고 실험적인 영역을 개척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을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대강 19세기 말부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세계에 거세게 도전했다. 이 무렵 이들이 반발한 것은 작품이 마치 상품처럼 거래되는 미술시장이었다. 미술은 아이디어가 중요하며, 회화와 조각같이 반드시 물리적인 대상일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이들은 사고팔 수 없는 미술, 관객 속으로 더 직접 파고들어갈 수 있는 미술을 추구했다. 캔버스·붓·끌 대신 신체를 사용하는 행위미술, 또는 퍼포먼스는 그 하나의 대안이었다. 전위예술가 백남준은 어둠 속에서 바이올린을 아주 천천히 들어올렸다가 불이 켜지면 아래에 있는 책상에 내리쳐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에는 이브 클라인이라는 아방가르드 행위미술가가 있었다. 그는 살아있는 여인의 신체를 붓 대신으로 사용했다. 1960년 관중 앞에서 여성 누드모델에게 푸른색의 물감을 발랐고, 모델들은 화가의 지시에 따라 캔버스에 몸을 비벼 화면에 푸른색 자국을 남기는 행위를 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클라인의 이 퍼포먼스는 그의 허락 아래 파올로 바바라가 촬영했는데, 그 장면이 영화 '몬도카네'(이탈리아어로 개 같은 세상이라는 의미)에 포함되었다. 이 영화의 성격을 잘 몰랐던 클라인은 자신의 행위미술이 왜곡되어, 1962년 칸 페스티벌에서 기이하고 충격적인 문화를 소개하는 한 장면으로 공개되자, 충격을 받고 심장마비를 일으켰으며, 몇 주일 후에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요즈음에는 새로운 미술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충동 자체가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대중의 문화의식도 높아지면서 더 이상 난해한 미술에 충격받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고립되고 저항적인 성격의 아방가르드 의미는 사라져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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