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87] 쾌락이 넘실대는 이 집에서 살고 싶은가?

yellowday 2012. 11. 29. 07:23

 

입력 : 2012.11.27 22:44

영국의 화가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1922~2011)이 1956년에 런던에서 열린 전시회 '이것이 내일이다'의 포스터를 위해 제작한 콜라주인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고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는 흔히 최초의 팝아트 작품이라고 불린다.

잡지의 광고 사진을 오려 붙여 만든 '오늘날의 가정을…'은 할리우드 영화와 텔레비전, 만화책과 자동차 광고 등 대중매체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한껏 부풀린 근육질 몸매의 남자는 역기 대신 막대 사탕 '투시팝'을 들고 있고, 과장된 제스처로 풍만한 '에스라인'을 자랑하는 여자는 모자 대신 전등갓을 쓰고 있다.

보기에는 우스꽝스럽지만 정작 본인들은 진지한 이 남녀는 사실 누구도 쉽게 이룰 수 없으나 누구나 욕망하는 현대의 이상적 육체상을 보여준다.

해밀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다르고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1956년, 콜라주, 26×24.8㎝, 튀빙겐미술관.
화면 왼쪽에 있는 진공청소기 광고의 화살표는 '보통 청소기는 여기까지밖에 닿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별 탈 없이 '보통 청소기'를 쓰고 있던 소비자들도

이 광고를 본 순간부터 청소기를 들어 옮기지 않고도 2층까지 청소할 수 있는 신제품을 바라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가정을…'은 끝없이 소비욕을 자극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 광고와 허황된 이상을 주입하는 대중매체와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각종 신제품이 약속하는 표피적 쾌락이 지배한다.

해밀턴은 결국 수백만명의 시청자가 동시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똑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동시에 울고 동시에 웃는 세상, 누구나 똑같은 인스턴트 햄을 먹고,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똑같은 뉴스를 보고, 똑같은 몸매와 똑같은 신제품을 욕망하는 세상이 과연 정말 그렇게 매혹적인지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