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84] "천국으로 보내주소서… 예배당을 바칠 테니"

yellowday 2012. 11. 7. 05:59

입력 : 2012.11.06 22:47

조토 디 본도네 '최후의 심판'(아래 일부) - 1305년 무렵, 프레스코화,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혁신적인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6?~1337)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파도바에 있는 스크로베니 예배당 내부의 벽화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붉은 건물에 내부 또한 둥근 터널처럼 단순한 구조를 가진 이 예배당은 부유한 은행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1303년에 가족 예배당으로 헌당(獻堂)하여 그 이름을 따 부르게 되었다.

조토는 벽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입구 위의 벽 전체에는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바로 그 최후의 심판 장면에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등장한다. 중앙의 권좌(權座)에 앉아 축복받은 영혼을 천국으로 끌어올리고, 저주받은 영혼은 지옥으로 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치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붉은 건물, 즉 이 예배당의 모형을 바치며 자비를 구하는 자가 엔리코다.

은행은 스크로베니 집안의 가업(家業)이었다. 그러나 욕심을 내다보면 건전한 은행업에서 부당한 폭리를 취하는 고리대금업으로 변질되는 것도 금방이다. 사실 엔리코의 아버지 리지날도 스크로베니는 기독교에서 죄악시하는 고리대금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 때문에 단테가 '신곡(神曲)'에서 '리지날도가 지옥에 있더라'고 쓰기도 했다.

엔리코는 심판자인 아들 예수보다는 이해심이 많을 어머니 마리아에게 당대 최고의 화가가 장식한 예배당을 성직자의 어깨에 얹어 바치는 것으로 어떻게든 지옥행을 면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한발만 더 가면 바로 끔찍한 마귀가 들끓고 불길이 치솟는 지옥이니 이를 피할 수만 있다면 건축비가 얼마든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지금 엔리코가 어디에 있는지는 신(神)만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