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04 22:28
1807년 2월 8일, 나폴레옹은 폴란드의 에일라우에서 그의 '대육군(大陸軍)'을 이끌고 러시아를 상대로 혈투를 벌였다. 전투는 나폴레옹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도 무려 2만5000명에 이르는 병력을 잃었으니, 사실상 이 전투의 승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에일라우의 승리를 기념하길 원했던 나폴레옹은 큰 상금을 걸고 회화 공모전을 열었다. 경쟁자 25명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쥔 이는 나폴레옹의 종군 화가로 이미 황제의 총애와 명성을 한꺼번에 누리던 앙투안-장 그로(Antoine-Jean Gros· 1771~1835)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실제로 에일라우에서 입었던 망토와 모자를 그로에게 하사했고, 그로는 죽을 때까지 그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로는 경연에 나설 생각이 별로 없다가 당시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었던 비방-드농 남작의 종용에 못 이겨 참여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에일라우의 승리를 기념하길 원했던 나폴레옹은 큰 상금을 걸고 회화 공모전을 열었다. 경쟁자 25명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쥔 이는 나폴레옹의 종군 화가로 이미 황제의 총애와 명성을 한꺼번에 누리던 앙투안-장 그로(Antoine-Jean Gros· 1771~1835)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실제로 에일라우에서 입었던 망토와 모자를 그로에게 하사했고, 그로는 죽을 때까지 그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로는 경연에 나설 생각이 별로 없다가 당시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었던 비방-드농 남작의 종용에 못 이겨 참여했던 것이었다.
- 앙투안-장 그로 '에일라우 전쟁터의 나폴레옹' - 1808년, 캔버스에 유채, 521×78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러나 그는 에일라우의 교훈을 너무 빨리 잊었다. 1812년, 또다시 러시아의 동토(凍土)를 침공한 그의 군대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때 나폴레옹의 기세를 꺾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불패(不敗) 명장이 바로 그 유명한 '동장군(Winter General)', 즉 매서운 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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