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11 22:41
- 야코프 판 라위스달 '표백장이 있는 하를렘 전경' - 1665년 무렵, 캔버스에 유채, 62.2×55.2㎝,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소장.
라위스달의 풍경화는 하를렘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매일 보고 사는 익숙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야트막한 둔덕에서 내려다본 강과 붉은 지붕 집들, 거대한 성(聖) 바보 성당과 크고 작은 풍차들이 점점이 박힌 들판이 높은 하늘 아래 펼쳐져 있다. 대지의 습기를 머금고 지평선에서부터 상공을 향해 솟아오른 뭉게구름은 마치 그 무게가 느껴질 것처럼 육중하고 뚜렷하게 그려졌다. 화가는 세로로 긴 캔버스의 3분의 2 이상을 하늘로 채워 비교적 작은 그림에서도 광활한 공간감을 느끼게 했다.
16세기 초부터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인들은 1648년에 이르러 마침내 80년간의 투쟁을 마치고 독립을 쟁취해 공화국을 세웠다. 대부분 개신교도이기도 했던 그들은 기존 유럽의 전통과 전혀 다른 분야의 미술품을 낳았다. 그때까지 미술품의 수요자는 주로 성상(聖像)을 중시하는 가톨릭 교회나 정치 선전의 수단으로 문화를 활용했던 왕실 및 귀족이었다. 이와 달리 종교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네덜란드인들은 라위스달의 풍경화처럼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그린 그림을 원했다.
라위스달의 그림 속 너른 들판에는 흰 리넨천을 길게 널어 말리는 표백장(場)이 있다. 테이블보와 냅킨 등의 사치품에 활용되던 리넨천의 제조 및 표백은 하를렘 시민에게 부(富)를 가져다준 주요 업종이었다. 이 또한 그들에게는 낯익은 광경이었겠지만 그 속에는 틀림없이 스스로 쟁취한 자유와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누리는 풍요에 대한 자부심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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