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동보살입상〉(국보 293호).
문화재에 이름을 붙이는 데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재료+내용+형태' 순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석조 여래 입상〉, 〈금동 보살 입상〉 식이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이름의 유물이 수없이 나오게 되어 학생들은 애칭을 붙여 그 유물의 고유한 성격을 기억하곤 한다. '삼화령 애기부처', '신라 짱구 불상', '미스터 통일신라'…. 그런 중 '미스 백제'라는 보살상이 있다.
이 〈금동보살입상〉(국보 293호)은 부여에서 출토된 것이다. 1907년 어느 날 백마강 건너편 규암리에 사는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옛날 쇠솥이 하나 파묻혀 있어 이를 꺼내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높이 22㎝와 28㎝의 금동보살상 둘이 마치 자매처럼 나란히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해 주었는데 당시 조선통감부에서 나온 일본 헌병이 나타나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유실물로 보관한다고 가져갔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뒤 '임자 없는 물건'이라 하여 일본인들을 상대로 입찰에 부쳤다. 이구열 선생은 〈한국문화재 수난사〉(돌베개)에서 당시 낙찰자는 니와세라는 일본인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둘 중 큰 보살상은 많은 우리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해 간, 대구에 살던 이치다 지로(市田次郞)에게 팔았다.
그리고 작은 보살상은 다행히 8·15 해방 후 압수되어 지금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바로 이 보살상이 '미스 백제'이다. 늘씬한 몸매에다 복스러운 얼굴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흐르고 있다. 머리엔 화사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몸에는 아름다운 영락(瓔珞) 장식을 'X'자로 무릎까지 길게 걸치고 어깨에서 발아래까지 드리워진 천의 자락을 왼손 끝으로 살포시 잡고 있다. 가히 학생들이 '미스 백제'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결코 '미스 백제'에 뒤지지 않을 큰 보살상의 행방을 우리는 아직껏 모른다. 어쩌다 국립부여박물관에 가서 이 불상을 볼 때면 나는 그가 언니와 헤어져 홀로 있는 것처럼 안쓰러워하는데 그는 〈금동보살입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여전히 천의 자락을 매만지며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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