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안압지(雁鴨池)에 가면 나는 은근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일어난다. 내가 교과서에서 안압지에 대해 배운 것이라곤 신라 왕실이 여기서 파티 하다 망했다는 얘기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압지를 특별히 가 볼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안압지는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신라시대 궁궐 건축으로 조선시대에 창덕궁의 비원이 있다면 신라에는 안압지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궁중정원임을 알게 됐다.
안압지는 이름부터 잘못되어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통일 직후인 문무왕 14년(674년)에 "궁 안에 못을 파서 산을 만들고 온갖 화초와 진귀한 새, 짐승을 길렀다"고 했다. 또 효소왕 6년(696년)과 혜공왕 5년(769년)에는 "군신들을 임해전(臨海殿)으로 모아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1980년 안압지를 발굴해 보니 토기 쪽에서 월지(月池)라는 명문(銘文)이 여러 점 나왔다.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대사 비문에는 헌강왕의 부름을 받아 월지궁(月池宮)에 당도하니 "달그림자가 연못 복판에 단정히 임(臨)하였다"고 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월지궁 임해전이 분명하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신라가 망하고 폐허가 된 뒤 연못가로 기러기가 날아드는 정경을 보면서 시인 묵객들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마치 고려 궁궐터를 훗날 만월대라고 한 것과 같다.
월지궁 임해전은 사방 190m, 약 4500평으로 한쪽은 반듯한 석축에 전각을 세우고 다른쪽은 자연석으로 절묘한 곡선을 이루었다. 그 직선과 곡선의 환상적인 어울림이 이 정원의 기본 미학이다. 가운데는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있어 이 연못 주위를 산책하면 계곡과 호수와 누정(樓亭)의 멋을 모두 즐길 수 있다.
벌써 오래전부터 월지궁 임해전은 두루 산보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 아름다운 조명이 밝혀지는 야간에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를 찾는 내국인 탐방객은 아주 드물고 외국인 관광객들만이 여기저기서 '판타스틱'을 연발하며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그들은 이국의 아름다운 궁궐 정원을 그렇게 즐기는데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월지궁 임해전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 오면 나는 괜스레 씁쓸한 마음이 일어난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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