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38] 목조반가사유상

yellowday 2011. 4. 3. 18:42

요즘 일본에서는 문화재에 번호를 매기지 않지만, 오랫동안 일본 국보 제1호로 불렸던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木造半跏思惟像)'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너무나 닮은 것으로 유명하다. 1951년 교토대학 식물학과에 다니는 한 학생은 관리인에게 부탁하여 이쑤시개의 5분의 1 정도 되는 눈곱만큼의 나무 부스러기를 떼어내어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그 재질은 놀랍게도 소나무였다. 당시 아스카(飛鳥)시대의 목불들은 대개 녹나무였는데 이 불상만이 유일하게 소나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보낸 것인지, 나무만 가져간 것인지, 또는 일본의 소나무로 만든 것인지 단정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서기〉 623년 조에 신라 사신이 불상을 가져와 고류지 당시 '진사(秦寺)'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고류지는 진하승(秦河勝)이라는 신라인이 세운 절이기 때문에 그때 보내준 것이라는 학설이 큰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본의 미술사가들도 이와 같은 불상은 도래(渡來) 양식이라고 해서 일본화된 불상과 분리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교토에 가면 우리 국보를 만나러 가듯 반드시 고류지에 들르곤 한다.

이 불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무수한 찬사가 있다. 그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1945년, 일본에 와서 이 불상을 보고 쓴 〈패전(敗戰)의 피안(彼岸)에 남긴 것들〉에 실려 있는 글이다.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표현한 여러 형태의 신상(神像)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들에는 어딘지 인간적인 감정의 자취가 남아 있어 절대자만이 보여 주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 미륵상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한동안 고류지에 가서 이 불상 앞에 서면 장내 안내 방송으로 이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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