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섣달 그믐밤 '제야(除夜)의 종'이 울린다. 서울의 보신각에서도 울리고,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도 울린다. 제야의 종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것은 훌륭한 범종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종은 서양 종과 달리 육중한 나무 봉으로 몸체를 두드려 울리게 하여 '땔랑땔랑' 하는 것이 아니라 '두웅' 하고 울린다. 그중 유독 우리 종은 맥놀이 현상의 긴 여운이 아름다워 음향학에서는 한국 종(Korean bell)이라는 별도의 학명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 범종 중 최고의 명작은 통일신라 때(771년) 주조한 높이 3.7m, 무게 20t의 '성덕대왕 신종(神鐘)'(국보 29호), 일명 에밀레종이다.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장중한 소리이면서도 옥처럼 맑은 소리를 울려내어 많은 공학자들이 그 음향 구조의 신비를 밝히는 여러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장무 교수(서울대)는 종의 키와 폭의 비율이 √2=1.414의 값에 가깝고, 당좌(撞座·봉이 닿는 자리)는 스위트 스팟이라고 해서 야구에서 홈런 칠 때 공이 방망이에 맞는 점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병호 박사(한국과학기술원)는 종소리의 톤 스펙트럼을 분석한 다음 음색과 음질을 채점해 보니 다른 종들은 100점 만점에 50점대에 머무는데 에밀레종만은 86.6점으로 나왔다고 했다.
에밀레종 몸체에 새겨져 있는 1037자의 긴 명문(銘文)의 첫머리를 보면 "종소리란 진리의 원음(圓音)인 부처님의 목소리"라고 했다. 한마디로 에밀레종은 통일신라의 종교와 과학기술과 예술이 하나 되어 만들어낸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몇 해 전부터 이 종은 영구보존을 위해 더 이상 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종은 쳐야 녹슬지 않는다는 반론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면 에밀레종 소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반세기 전에 주한미군 라디오방송은 전국 사찰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범종소리를 녹음, 임택근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테이프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에밀레종을 비롯하여 이미 깨져 칠 수 없는 오대산 상원사종 등 수십 개의 종소리가 들어 있는데 그 해설 마지막엔 이런 말이 나온다. "서양의 종은 귀에 들리고 한국의 종은 가슴 깊은 곳에 울린다."
▲12월 31일자 A30면 '유홍준의 국보순례' 중 "오늘 제야의 종이…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도 울린다"고 했으나, 매년 개최되던 석굴암 제야의 종 행사가 이번에는 열리지 않았기에 바로잡습니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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