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42] 이인상의 설송도

yellowday 2011. 4. 3. 18:47

눈이 많이 내렸다. 생활에 불편은 많았지만 눈다운 눈이 내렸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세상엔 눈꽃보다 아름다운 꽃이 없다고 한다. 고궁으로 눈꽃 구경 갔다가 백설을 머리에 인 소나무를 보니 저절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1710~1760)의 '설송도(雪松圖)'가 떠올랐다. 바위 위에 솟아 있는 두 그루 노송이 눈에 덮인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한 그루는 낙락장송으로 곧게 뻗어 올라가고 한 그루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단순한 소재이지만 화면 상하 좌우를 대담하게 생략하여 소나무의 늠름한 기상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동양화로는 드물게 여백 전체를 엷은 먹빛으로 채워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점 속기(俗氣) 없는 고아(古雅)한 그림이다.

연암 박지원의 '불이당기(不移堂記)'에는 이공보와 능호관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 하나가 들어 있다. 어느 날 이공보가 능호관에게 잣나무 한 폭을 그려달라고 청하자 얼마 뒤 '눈이 내리네(雪賦)'라는 시를 전서체로 써서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부탁한 그림은 좀처럼 보내오지 않아 독촉했더니 능호관은 이미 주지 않았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공보가 "그때 준 것은 글씨였지 그림이 아니었네"라고 하자 능호관은 웃으며 "그 글씨 속에 그림이 다 들어 있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그림에는 문인화만이 지닌 높은 차원의 미학이 들어 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외형적인 형태보다 내면적 진실성을 중시했고,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품격(品格)을 담아내는 데 무게를 두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간해서는 능호관 그림의 진수를 잡아내기 힘들다. 당대의 안목들은 우리에게 그의 예술에 감추어진 비밀을 말해주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그의 그림에서 진실로 주목할 것은 문기(文氣)라고 했다. 김재로는 능호관 그림의 묘처(妙處)는 농밀(濃密)함이 아니라 담백(淡白)함에 있고, 기교의 빼어남이 아니라 꾸밈없는 필치에 있다며 "오직 아는 자만이 알리라"라고 했다.

올해로 능호관 이인상은 탄신 300주년을 맞이한다. 머지않아 그의 예술을 기리는 기념전이 열릴 것이니 그때 우리는 명화 중 명화로 손꼽는 이 '설송도'를 보면서 격조 높은 문인화의 세계를 한껏 만끽해 볼 일이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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