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지웠다 다시 쓰고 썼다가는 지우고
하얗던 편지지가 까맣게 변해 간다
밤 새워 적은 사연이 겨우 친애하는 등굣길 저만치에 네 모습이 보이면 마음은 반가운데 발길은 돌아서고 수밀도 붉은 볼처럼 달아오른 내 얼굴 뭐라고 말할까 오랜만에 만나면 언약은 아니지만 눈빛으로 약속한 걸 잊지도 못 했으면서 전하지도 못했네 어젯밤 내린 눈이 눈물 되어 흐른다 하루도 못 피우고 사라질 꽃이라면 차라리 얼음이 되어 이별 없이 살 것을 두 발 못 놓고 매달리는 심정 알까요 아랫목 따듯해도 누워 보지 못하고 주인과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침엔 차 한 잔에 얼은 마음 녹이고 저녁엔 시 한수에 무거운 짐 덜어 내니 내 삶의 몰랐던 향기까지도 시꽃마을에 뿌렸네 언제나 써보겠나 믿어지지 않더니 큰 손자 대 경사 날에 이리 꺼내 쓸 줄은 우동 국물에다 안주 없는 술이라도 하루 내 쌓인 서러움, 한 잔이면 족하리
사랑
그리움
이별
이시대 살아 가는 고삐 없는 당나귀
당신이 등에 진건 가족이란 멍에뿐
쓸쓸히 돌아 누운 잔등이 소나무 껍질같다
어머니:
한 마리 우렁이로 이 세상 태어나
우리속 새끼들 제살 먹여 키우시고
껍질만 남아 사라질지언정 마다 않고 다 준다
밥상:
찌게는 보글보글 마음은 지글지글
참기름 안 넣어도 고소한 사랑 맛
열두곡 섞어 지은 밥엔 무지개가 떠 있다
길:
바른 길 굽은 길 평탄한 길 가시밭 길
선택한 이 길이 나의 길이 분명하니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맨 발로 걷는다
자화상:
긴 세월 사느라 수고 많이 하셨소
골골이 패인 주름 좁은 속이 남긴 물길
이제사 꿈 이루게 되었으니 마음 펴고 살기를
신발:
발바닥 붙들고 버텨온 내 분신
포근한 집인데 앉아서 잠을 잔다.
언젠가 주인 사랑이 떠나갈까 두려워
도장:
오래전 선물로 상아도장 받았지요
늙기전 좋은일 있어 쓸일이 있을려나
드디어 도장 쓸일 생겼다네 나만의 내이름
포장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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