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되살아난 '그림 속 풍경'

yellowday 2012. 7. 12. 00:33

입력 : 2012.07.11 22:10

빈센트 반 고흐가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5㎞쯤 떨어진 곳에 있다. 그가 권총 자살을 한 지 120년이 지났지만 이 마을에는 지금도 고흐의 그림 속 풍경이 많이 남아 있다. 고흐의 후원자였던 가셰 박사 집과 정원, 고흐가 산책하던 골목길과 계단, 까마귀 나는 밀밭…. 고흐가 그렸던 오베르성당은 첨탑과 시계, 창틀의 생김새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고흐는 생전에 단돈 5프랑이 아쉬워 작품을 팔려고 했지만 오베르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고흐가 죽은 뒤 그의 그림 속 풍경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면서 오베르는 고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고흐가 그리기 전까지 오베르 밀밭은 프랑스에 흔한 풍경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흐의 붓끝이 닿으면서 그 밀밭은 사람들 마음에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됐고 가보고 싶은 곳이 됐다.

▶서울은 풍경화에서 받은 느낌을 직접 가서 확인하려 해도 좀처럼 그럴 수 없는 도시다.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 '서울 풍경의 변천'이라는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20세기 여러 시기마다 서울 구석구석 풍경을 담은 동양화·서양화가 100여점 전시됐다. 얕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강 밤섬, 소방서 망루가 하늘 높이 치솟은 광화문 네거리, 돛단배가 유유히 오가는 한강과 강가에서 빨래를 두드리는 아낙네들…. 불과 40~50년 전 풍경이지만 그림 속에만 남아 있고 모두 사라졌다.

서울시가 조선시대 진경산수 대가(大家)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인왕산 수성동(水聲洞) 계곡을 그림 속 풍경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인왕산 기슭에서 태어나 인왕산 기슭에서 84년을 살다 죽은 겸재는 인왕산 이곳저곳을 담은 작품을 수십 점 남겼다. 수성동은 인왕산 골짜기 중에서도 특히 물소리가 우렁찬 곳이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도 '이 소리 세상에 들려 저 속된 것들 야단쳤으면'이라는 시구를 남겼다. 그러나 1971년 이 일대를 깔아뭉개고 300여가구가 사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걸작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인왕산의 산세는 다행히 지금도 의연하다. 그러나 겸재의 다른 그림에 나오는 인왕산 풍광은 자취도 없다. 잘 있던 풍경을 우리처럼 필요에 따라 쉽게 부수고 쉽게 복원하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수성동을 복원했다 한들 겸재 그림 속 풍경과 같을 수야 있을까. 다만 이번 복원이 그간 변화를 당연시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고 예(藝)의 가치도 한번쯤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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