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08 22:23
"7층 높이에서 일했는데, 저승이 어딘가 했는데, 죽어나오는 사람이 자꾸 날마다 몇이 나오거든. 전기하다 감전돼 죽는 사람, 널쩌가(떨어져서) 죽는 사람. 그게 한정 없이 나옵디다." 70년 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 조선소에 끌려갔던 경남 산청 출신 김종술 할아버지의 증언이다. 1944년 조선인 노무자와 가족은 나가사키 시내에 2만명, 나가사키현 전체에 7만5000명쯤 있었다. 시내에 있던 조선인은 절반이 미쓰비시 그룹 소속이었고, 조선소에만 4700명이 배치됐다.
▶미쓰비시 조선소는 나가사키항 터미널 부두 건너편, 나가사키만(灣) 서해안 쪽에 거대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대표적 전함 '무사시' 같은 수많은 함정을 만들었다. 근처에는 일본 해군 어뢰의 8할을 만들었다는 병기 제작소, 그리고 여러 제강 공장과 탄광도 있었다. 시 전체가 전쟁물자를 쏟아낸 일본 군수산업의 요람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일본에서 만드는 이지스함의 30%를 미쓰비시 조선소가 제조한다"고 자랑한다.
▶일본이 미쓰비시 조선소, 신일본제철의 야하타 제철소,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섬, 미이케항을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추진 중이다. '19세기부터 압축적 산업 근대화를 이룬 역사적 현장'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몇 해 전 '규슈·야마구치 근대화산업 유산군(遺産群) 세계유산추진협의회'란 조직도 만들었고, 지난 3일 전문가 회의까지 열었다. 그곳이 메이지유신 전후로 일본 근대화의 꽃을 피운 지역임을 부각할 뿐, 전범(戰犯) 기업이 뿌리내렸던 군수 도시이자 '가해자의 땅'이란 사실은 감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나뉜다. 현재 문화유산이 725점, 자연유산이 183점이다. 문화유산 중엔 독일 �n크링겐 제철소, 스웨덴 엥겔스버그 제철소, 영국 데르웬트계곡 방적공장도 있다. 19세기에 세워진 �n크링겐 제철소는 서유럽과 북미의 통합 제철소다. 엥겔스버그 제철소는 17세기부터 이 분야 선두주자였고 시설 보존도 완벽하다. 조금이라도 군수산업과 연결된 곳은 전쟁 뒤 철저한 참회 과정을 거쳤다.
▶나가사키 앞바다 하시마섬은 조선인의 피와 눈물로 탄(炭)을 캐던 곳이다. 한수산의 다큐 소설 '까마귀'는 그곳이 징용자들에게 지옥의 섬이었다고 고발한다. 나치 학살의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미쓰비시는 아직 강제 징용자들에게 보상금 한 푼 내놓지 않았다. 일본은 미쓰비시 조선소와 하시마섬 흙속에 깊이 스며들어간 조선인의 피눈물까지 솔직하게 꺼내 보이는 일을 먼저 해야 할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