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소녀시대' 우표

yellowday 2012. 7. 5. 06:25

입력 : 2012.07.04 23:04

2003년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김연수는 초등학생 때 우표 수집에 빠졌다. 그는 1979년 12월 최규하 10대 대통령 취임 우표를 산 지 두 달 지난 1980년 2월 박정희 대통령 추모 우표를 30원 주고 구입했다. 그해 9월과 이듬해 3월엔 전두환 11·12대 대통령의 취임 우표를 사 모았다. 김연수는 자전소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 이렇게 썼다. '유신 시대엔 최소한 10년은 걸려야만 모을 수 있었을 새 대통령 취임 우표를 불과 3년 만에 석 장이나 수집하다니'.

▶대통령은 단골 우표 모델이었다. 이승만은 일곱 차례, 박정희는 스물네 차례 우표에 나왔다. 전두환은 해외를 방문할 때마다 기념 우표를 내면서 모두 마흔일곱 차례나 등장했다. 전두환 우표가 수집가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다음으론 역사 속 옛 위인들이 우표를 장식했다. 마라톤의 황영조, 2002년 월드컵 축구대표팀 같은 스포츠 스타들은 어쩌다 얼굴을 내밀었다. 영화배우도 가끔 등장했지만 한국 영화 기념 우표에 '조연'으로 얼굴을 내미는 데 그쳤다.

▶2001년 독일 우정국이 긴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웃고 있는 오드리 헵번을 우표에 등장시켰다. 유족은 헵번이 담배를 피우다 암에 걸려 숨졌기에 담뱃대 문 사진이 보기 좋지 않다며 우표 배포와 사용을 중지해달라고 요구했다. 우정국이 우표를 거둬들여 태웠지만 다섯 장이 살아남았다. 그중의 한 장이 3년 전 경매에서 1억1900만원에 팔렸다.

▶1993년 미국 우정공사는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우표를 5억1700만장이나 찍었다. 13년 지나 우정공사가 조사했더니 프레슬리 우표 중에 1억2410만장을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었다. 할리우드 스타 우표는 1995년 매릴린 먼로를 시작으로 험프리 보가트, 제임스 딘까지 열네 차례 나왔다. 영국에선 2004년 지브롤터 반도의 영국 귀속 300년을 기리는 우표 모델로 가수 엘튼 존이 선정됐다. 프랑스에선 이브 몽탕, 일본에선 미소라 히바리 우표가 선보였다.

▶우리도 2008년 조용필 데뷔 40년 기념 우표가 나온 적이 있지만 팬들이 '나만의 우표' 시스템으로 찍은 것이다.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 파일을 주고 우표를 주문하는 방식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처음으로 연예인 기념 우표를 8월 초 찍어낸다고 한다. K팝 열풍의 주역 '소녀시대'가 첫 모델이다. 우리 우표가 비로소 엄숙주의에서 벗어나는 모양이다. 우표는 한 시대를 담는 풍속화다. '소녀시대' 우표에 이어 우리 시대의 다양한 얼굴이 손톱만 한 풍속화에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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