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강간죄 판결

yellowday 2012. 7. 2. 21:59

입력 : 2012.07.01 23:03

의류사업을 하는 50대 남자가 2007년 어느 날 새벽 서울 시내 골목길을 가다 반지하 원룸에서 자는 20대 여성을 발견했다. 남자는 방범창을 뜯고 들어가 여성을 깨진 유리 조각으로 위협하고 성폭행했다. 남자는 주거침입 강간죄로 구속 기소됐지만 서울북부지법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풀어줬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했고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으며 성폭행 전과(前科)가 없다"고 설명했다.

▶부산고법은 2008년 순찰을 하다 혼자 사는 여성 집에 침입해 성폭행하고 상처를 입혀 구속 기소된 30대 경찰관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부산고법 역시 "피해자와 합의했고 전과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2010년 흉기를 사용해 강간하거나 강도와 강간 범죄를 함께 저지른 174명 중 33.3%, 58명이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피고인이 '합의'했다거나 '초범'이라거나 '반성'한다는 게 한결같은 이유였다.

▶해외주둔 미군을 위한 군사전문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가 엊그제 한국 법원의 강간죄 판결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대구고법이 한국 여성을 강간·폭행한 주한 미군 병사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풀어준 사실을 전하면서다. 이 서른한 살 병사는 작년 7월 술집에서 알게 된 여성과 함께 이 여성 집에서 술을 마시다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했다. 1심 대구지법은 미군 병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인 대구고법은 "피해자와 합의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가해자가 미군이어서 팔이 안으로 굽을 법도 하지만 성조지는 단호했다. "한국에선 성범죄일지라도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형을 감면받는다"며 "용서받을 수 없는 성폭행 범죄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풀려나는 것을 미군들이 오히려 의아해한다"고 했다. 13세 이상 피해자를 성폭행했을 경우 기본 양형(量刑) 기준이 우리 법원은 3년 9개월, 미국 연방법원은 14년이다. 미국은 강간죄에 대해 실형 선고를 원칙으로 한다. 미국 기준에서 보면 한국 법원 판결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도 하다.

▶우리 대법원 양형 기준에는 강간죄뿐 아니라 살인이나 강도죄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했는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지를 따져 형량을 정하게 돼 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가해자가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웬만큼 변상하면 용서해주는 한국적 문화가 반영돼 있다. 성조지 보도는 우리 법원의 온정주의 판결은 물론, '죄와 벌'에 대한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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