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10 22:51
조선 왕실에선 음식이 곧 보약이라고 여겼다. 세조는 1463년 손수 쓴 책 '의약론'에서 입맛을 건강의 잣대로 삼았다. "입이 달면 기운이 편안하고 입이 쓰면 몸이 괴로워진다." 그는 의원(醫員)을 여덟 등급으로 나눠 환자 마음을 편하게 해 병을 고치는 심의(心醫)를 최고로 쳤다. 이어 음식으로 병을 낫게 하는 식의(食醫)가, 약으로 치료하려는 약의(藥醫)보다 한 수 위라고 했다. "음식을 달게 먹으라 하는 의원이 식의다. 그러나 과식을 말리지 않는 자는 식의가 아니다."
▶조선의 왕이 받은 수라상엔 밥과 탕 빼고 열두 반찬이 올랐다. 찜·구이·조림·산적·편육·생채·장아찌·젓갈로 꾸몄다. 왕들이 즐긴 특별 보양식은 붕어찜이었다. 닭과 메추라기도 기운을 돋우는 음식으로 꼽혔다. 해산물 중에선 전복을 최고로 쳤다. 그러나 가뭄과 홍수가 들어 백성이 고통받을 때 왕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반찬 가짓수를 덜거나, 보통 하루 다섯 차례인 식사 횟수를 줄이기도 했다. 신하들이 당파 싸움에 빠질 때 숫가락을 들지 않은 왕도 있었다. 신하가 왕의 뜻을 알아서 스스로 정쟁을 멈추게 하는 '밥상 정치'였다.
▶과식을 가장 멀리한 왕이 영조였다. 영조는 미음에 우유를 섞어 끓인 타락죽(駝酪粥)을 좋아했다. 소화가 잘되고 단백질과 지방을 채워주는 보양식이었다. 궁녀 몸에서 태어난 영조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자란 탓에 심성이 예민하고 소화력이 약했다고 한다. 입이 짧았던 영조는 임금 자리에 오른 뒤 수라상의 산해진미를 즐기지 않았고 금주령까지 내렸다.
▶영조는 특히 차고 설익은 음식을 싫어했다. 사도세자가 열세 살 때 냉면과 청도(靑桃)를 먹고 배탈이 나자 영조는 "이런 것들은 아주 해로운 것"이라고 나무랐다. 영조가 그나마 좋아한 생선은 조기였다. 그는 여름이면 보리밥을 물에 말아 조기를 반찬 삼아 먹었다. 일흔이 넘어서는 고추장의 감칠맛에 빠져 고추장 없이는 밥을 먹지 못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오늘 '인문학자가 차린 조선왕실 식탁' 심포지엄을 연다.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옛 기록을 뒤진 인문학자 열두 명이 왕실의 식생활을 다룬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학자들은 한결같이 조선 왕실의 음식 문화를 '절식(節食)'으로 요약했다. 왕자들은 '식탐(食貪)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 '진수성찬을 멀리하라'는 신하들의 말을 잘 들으면 성군(聖君)이 됐다. 조선의 왕 못지않게 권력을 쥐고 흔들던 요즘 '왕의 남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있다. 영조와 정조 시대의 '밥상 정치'부터 배웠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