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12 23:30
2010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미국인들이 만든 영화 '더 코브'가 장편 다큐상을 받았다.
무대는 일본 중남부 태평양 연안 와카야마현 타이지(太地) 마을이다. 작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바다 쪽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막혔고
날카로운 철망까지 쳐 있다. 주민은 외부인 접근을 막고 때론 위협도 한다. 돌고래 사냥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다.
어부들은 어선을 타고서 돌고래떼를 작은 만(灣)에 몰아넣은 뒤 작살로 찍어 올린다. 축구장 서너 개 넓이 바다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든다.
▶화면 속에서 살려달라 발버둥치던 수십, 수백 마리 돌고래는 하릴없이 물 위로 꼬리를 내젓다 이내 잠잠해진다.
그해 작품·감독상을 받은 이라크전 영화 '허트 로커'도, 3관왕에 오른 거대 흥행작 '아바타'도 '더 코브'가 증언했던 돌고래 학살 충격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동물 조련사 출신인 일흔셋 릭 오베리 같은 돌고래 보호운동가들이 수중촬영·특수녹음 전문가들과 함께 7년을 찍었다고 했다.
▶그 무렵 '운 좋게도' 타이지 마을의 큰돌고래 암수 두 쌍이 그곳 고래박물관에서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으로 옮겨 왔다.
지금은 세 마리가 남아 체험관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다.
울산에서 '고래 사랑 시인 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일근은 그 고래들을 쓰다듬으며 "고생했어.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줘" 하며 속삭였다고 했다.
그는 요즘 걱정이 많다. 지난 4일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우리 정부가 "과학적 목적의 고래잡이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우선 환경단체와 국제포경위 회원국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 여론도 썩 편드는 쪽은 아니었다.
그러자 농식품부가 11일 "대안을 찾을 수만 있다면 고래잡이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수백 년 고래고기를 즐겨온 울산 지역 주민도 의견이 갈렸다. 고래를 구경하는 '관경(觀鯨) 고래축제'를 해야지
고래를 잡는 포경(捕鯨)을 하면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걱정한다. 마릿수가 너무 많아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정 시인은 수요일이면 목측(目測) 고래 조사선을 타고 앞바다로 나간다. 함께 승선했던 김남조 시인은 밍크고래가 바로 곁에서 솟구치는 횡재를 했다.
그들은 50년 전 울산 앞바다에서 사라진 귀신고래를 기다린다. 포경선이 나타나면 귀신처럼 달아난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귀신고래를 찾는 데 현상금이 걸린 적도 있다. 한국인 심성을 닮았다는 귀신고래는 부부 금실도 좋다.
암놈이 죽으면 수놈이 곁을 지키고 새끼가 죽어도 곁을 빙빙 돌다 붙잡힌다. '고래 사냥'보다 '고래 사랑' 방법을 궁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