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6.20 23:06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죽기 전 여배우 카렌 블랙에게 "난 배꼽이 없다"며 배를 보여줬다. 의사들이 수술을 너무 많이 해 배꼽을 파냈다고 했다. 1980년 5월 미국 베벌리힐스의 굿셰퍼드 성당에서 히치콕의 장례식이 열렸다. 수술 자국투성이인 몸은 화장됐다. 유족은 뼛가루를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뿌렸다. 그 뒤 영화배우 록 허드슨, 스티브 매퀸, 로버트 미첨도 화장 후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 마치 히치콕을 본뜬 할리우드 전통이 된 듯했다.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에는 로마 신화의 해신(海神) 이름을 딴 '넵튠 해저 묘역'이 있다. 해안에서 5㎞쯤 떨어진 바다 밑 분지에 축구장 8개 넓이로 조성된 묘역이다. 유해를 화장한 뒤 뼛가루를 시멘트와 섞어 여러 모양의 콘크리트 블록을 만들고 이를 바다 밑에 가라앉힌다. 2007년에 문을 연 바다 밑 묘역은 유해 850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안식처가 필요한 물고기는 물론 스쿠버다이빙 유족들이 참배하러 찾아온다.
▶뼛가루를 바다에 뿌리는 장례를 못하게 막는 나라는 거의 없다. 배에서도 뿌리고 비행기에서도 뿌린다. 태국은 불교 전통에 따라 유골을 화관(花冠) 속에 안치하고 촛불을 켜서 바다로 띄워 보낸다. 영국 성공회는 해군 출신이 사망하면 화장한 후 바다 장례를 치른다. 호주는 '바다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인물에 한해 시신을 직접 바다에 장사 지낼 수도 있다. 방부 처리를 하고 무겁게 만든 수의를 입혀 수심 2000m 이하 물속에 묻는다.
▶국토해양부가 어제 "화장한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행위가 해양환경관리법상 해양 투기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다 장례가 불법이 아니라고 확인한 셈이다. 그동안은 바다에 뼛가루를 뿌리면 환경이 오염된다는 논란이 있었다. 한국해양연구원도 이런 장례가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했다. 국민 중 27%는 유골을 어딘가에 뿌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실제 인천 앞바다에선 해마다 900건 가까운 바다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중국의 현자 양주(楊朱)는 "죽은 후의 것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화장도 좋고, 수장도 좋고, 땅속에 묻혀도 좋고, 땅 위에 버려져도 좋다"고 했다. 프랑스의 루소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번에 바다 장례에 대한 논란은 해결됐다고 해도 유골을 산이나 강에 뿌리는 행위는 아직도 혼선을 빚고 있다. 묘지 부족 사태를 해결하려면 이 문제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갈 몸이 자연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뼛가루가 어디에 뿌려진들 뭐가 문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