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노인' 考

yellowday 2012. 6. 19. 07:03

입력 : 2012.06.18 22:23

조선시대 송강 정철의 작품 중에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다. 송강이 길을 가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노인을 만났다. '늙는 것도 서러울 텐데 짐까지 지셔야 되겠는가. 짐은 젊은 제가 지고 가겠소이다'라고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다. 여기서 '늙은이'는 낮춰 부르는 말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노인(老人)'과 함께 나이 든 이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였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노인(老人)'만 자리 잡고 '늙은이'는 보통은 잘 안 쓰이게 됐다.

▶송강 시 속의 '늙은이' 연배는 어느 정도였을까. 아마도 쉰을 훌쩍 넘겼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인 평균 수명은 1925~1930년 37.4세였다가 10년 후인 1935~1940년 40.9세로 늘었다. 영양 상태나 의료 환경을 생각할 때 조선시대 사람들 수명이 이보다 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흔 안팎이면 노인으로 행세하고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였다는 얘기다. 근대 이후에도 서화가 중에는 40~50대 나이에 작품에 '○○老人' 하고 서명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손가락질받기 십상일 것이다. 현재 한국인 평균 수명은 81세로 OECD 평균을 웃돈다. 65세 이상 노인이 5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1.3%나 된다. 노인 수가 많아진 데다 과거에 비해 훨씬 건강하고 활동적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노인들은 '노인'이라 불리는 것조차 꺼린다. 몇 해 전 보건복지부가 60세 이상 1만5000명을 대상으로 몇 살 때부터 '노인'으로 부르는 게 적당한가 물었다. 51%가 '70~75세'라고 답했고 '75~80세'도 10%나 됐다. 지금은 '노인' 기준 연령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서울시가 공식 문서나 행사에서 '노인'이란 말을 안 쓰기로 했다고 한다. 한창 의욕을 갖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거나 살아가는 분들을 예전처럼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상대로 '노인'을 대체할 말을 공모해 우선 '노인복지관' '경로당' '서울시 노인복지과' 같은 이름부터 바꾸기로 했다.

▶눈 덮인 알프스에 사는 스위스 사람들은 60세 넘은 노인을 '빨간 스웨터'라고 부른다. 회갑 때 가족이 손수 짠 빨간 스웨터를 선물로 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빨간색처럼 정열적으로 남은 인생을 살라는 뜻도 된다. 중국에서는 잘잘못을 깨우치는 나이라 해 지비(知非)라고도 부른다.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연세 든 분들을 부르는 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진심을 다해 그들을 위한 복지와 예우를 행동으로 옮기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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