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노처녀' 사회

yellowday 2012. 6. 23. 05:28

입력 : 2012.06.21 23:04

"이 내 팔자 사나워 사십까지 처녀로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세상에 태어나지 말 것을…". 조선 후기 가사(歌辭)문학 중에 '노처녀가'가 있다. 이 작품의 노처녀는 몰락한 양반 집안에 태어난 탓에 쉽사리 배필을 찾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양반 체면을 따지는 부모가 사윗감 고르는 눈이 높다 보니 어느덧 중매쟁이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노처녀는 "노망한 우리 부모 날 길러 무엇하리/ 죽도록 나를 길러서 잡아 먹을까 구워 먹을까"라며 원망한다.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선 고학력의 미혼 직장 여성을 그린 소설이 부쩍 늘어났다. 백영옥의 장편 '스타일'에선 노처녀들이 모여 푸념한다. "이 도시엔 왜 이렇게 잘난 노처녀들이 많은 거냐. 잘난 노총각들은 씨가 말랐고." 그녀들은 잘 꾸미고 다니지만 남자들이 '어려 보이는 노처녀'보다는 '진짜 어린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곤 풀이 죽는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 초혼(初婚) 연령은 1981년 23세였지만, 지난해 29.1세로 높아졌다. 중·고교 졸업 여성이 평균 27.9세에 면사포를 쓰는 반면에 대졸 여성은 29.2세다. 결혼을 원치 않는 비혼(非婚) 여성도 늘어났다. 20~40대 여성 중 47.1%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한다.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을 병행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들 한다.

통계청이 지금 35~39세 미혼 여성의 혼인 상태를 추정했더니 72.8%가 50세가 돼도 미혼 상태로 남을 것으로 나타났다. 35~39세 미혼 여성 25만4000여 명 중에서 2035년에도 18만5000명이 평생 독신으로 산다는 예측이다. 같은 연령층의 남자가 50세까지 장가를 못 가는 경우도 56.3%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고학력 미혼 여성일수록 저학력 남성을 고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짝을 찾지 못하게 된다. 이대로 가면 20여 년 뒤 미혼 남성도 32만3000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혼 남성과 여성이 늘면 저출산이 심해져 경제활동인구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미혼 여성이 직장을 잃게 되면 금방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노후에도 돌보는 가족이 없어 국가가 그 계층의 복지(福祉)를 몽땅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된다. 독신 인구 1500만 명인 프랑스에선 3년 넘게 동거한 커플에겐 사실혼을 인정해 보통 부부와 똑같이 세금을 공제하고 유산 상속권과 사회보장 혜택을 주는 시민연대협약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도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세대를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판 '시민연대협약'을 실시해야 할지 모른다. 결혼 제도와 풍속, 문화 모두 바뀌는 세상이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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