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가뭄

yellowday 2012. 6. 23. 05:29

입력 : 2012.06.22 23:09

1978년 가뭄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석 달 넘게 비가 안 와 모내기를 못하고 이삭 팬 보리는 말라비틀어졌다. 대통령이 날마다 가뭄 대책을 다그치자 농수산부는 애가 탔다. 해법은 일본에서 양수기를 몇 만 대 사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문한 양수기가 오기 전에 비가 내린다면 귀한 외화(外貨)만 낭비하는 것 아닌가. 장관은 고심 끝에 용하다는 도사(道士)를 찾아갔다. 도사는 "곧 비가 올 테니 살 필요 없다"고 했다. 장관은 자리를 거는 심정으로 양수기를 주문하지 않고 초조하게 비 올 날을 기다렸다. 머지않아 하늘에서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고 장관은 도사를 찾아가 술잔을 기울였다 한다.

중국 은나라 탕왕 때 7년이나 가뭄이 이어졌다. 신하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자 탕왕은 이를 물리쳤다. "백성을 위해 비를 빌면서 백성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 왕은 자신이 목욕재계하고 들판에 나가 여섯 가지를 하늘에 묻고 자책했다. '정치가 알맞게 조절되지 않았습니까' '백성들이 직업을 잃고 있습니까' '뇌물이 성행합니까' '아첨하는 자들이 들끓고 있습니까'…. 탕왕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옛사람들은 큰 가뭄이 들면 자신을 돌아보는 걸 기우(祈雨)의 한 방법으로 여겼다. 백성들은 산이나 냇가에 제단을 차려놓고 정성을 다해 비가 흡족하게 내리기를 빌었다. 양반들은 더워도 부채질을 하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것은 비단 곡식뿐 아니었다. 돌돌 말린 풀잎은 뿌리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불만 그어 대면 땅덩이 전체가 불바다가 될 형편이다.' 이무영이 소설 '기우제'에서 묘사한 것 같은 가뭄에 속이 타는 요즈음이다. '곡우(穀雨·4월 20일)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고 했다. 그 이후 두 달 동안 이어진 가뭄으로 모내기도 하지 못한 농가가 수두룩하다. 이미 심은 고추·마늘·고구마가 말라죽어가는 걸 바라만 봐야 하는 농민의 가슴도 까맣다.

▶흔히 '물 쓰듯 한다'는 말을 한다. 돈이든 재물이든 아까운 줄 모르고 흥청망청 쓴다는 말이다. 물이 귀한 아랍권에선 이 말을 '무섭게 아껴 쓴다'는 뜻으로 쓴다고 한다. 수십, 수백m 지하에서 물을 끌어올려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자연이 화나면 역시 무섭다는 걸 가뭄을 통해 다시 실감한다. 우리는 물의 고마움을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 월말께나 비가 올 것 같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멋지게 빗나가 이번 주말부터라도 반가운 비가 좍좍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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