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청계천 '행운의 동전'

yellowday 2012. 5. 24. 06:58

입력 : 2012.05.23 22:37

2005년 로마 트레비분수를 청소하던 용역 직원 넷이 분수에 가라앉은 동전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몇 주 사이 빼돌린 돈이 11만유로, 1억6500만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 트레비에는 하루 3000유로, 450만원쯤 동전이 쌓인다. 분수를 등지고 서서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낭만적 속설 덕분이다. 18세기 유럽 귀족 자녀들이 이탈리아로 유람왔던 '그랜드 투어' 때 생긴 말이다.

▶트레비분수 동전 던지기를 세계 여행자들의 로마 통과의례로 만든 것이 1954년 할리우드 영화 '애천(愛泉·Three coins in the fountain)'이다. 로마에 온 세 미국 여인이 트레비에 동전을 거듭 세 차례 던져 사랑을 빈 끝에 멋진 남자와 맺어진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장소에 사연이 깃드는 '스토리 텔링'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로마시는 동전을 거둬 가톨릭 자선단체에 보낸다.

▶순천 송광사 승보전 옆에 말 구유처럼 생긴 나무 통이 있다. 300년 전 느티나무 고사목을 길이 5m, 너비 1.2m로 파낸 밥통 '비사리 구시(구유)'다. 왕실의 국재(國齋)를 지낼 때 4000명분 밥을 담아 손님을 먹였다 한다. 이 송광사 명물 안에 언제부턴가 동전이 쌓였다. 송광사는 사람들이 동전 던져 넣는 걸 말리다 못해 그 돈을 좋은 일에 쓰기로 했다. 구시 곁에 "순천 복지시설에 보낸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05년 청계천이 다시 흐르면서 개천이 시작되는 폭포 아래쪽에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2008년 이곳 물속에 둥근 금속 접시를 놓아 표적으로 삼게 했다. 재작년엔 접시에 화강암으로 만든 '소망석'을 받쳐 물 위로 올렸다. '행운의 동전 던지는 곳'이라는 표지판도 붙였다. 이렇게 모은 동전이 지난주 120만개, 8000만원을 넘겼다. 8월이면 1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우리 동전은 공동모금회에, 외국 동전은 유니세프에 맡긴다. 51개국 동전 중엔 일본 동전이 가장 많고 태국·중국·미국이 뒤를 잇는다.

▶동전이 집안 서랍이나 저금통에서 잠자는 바람에 한 해 동전 찍는 비용만 700억원이 들어간다. '행운의 동전' 같은 자선 동전 모으기는 동전 발행비 줄이는 효과도 있겠다. 서울시에 들어온 청계천 체험기를 보면 "동전을 던지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는 글이 많다. 외국인은 주로 "한국 여행의 추억이 오래 아름답게 남기를" "친구들과 잘 지내기를" 소원했다. 서울과 한국에 다시 오고 싶어하는 관광객이 많을수록 청계천에 더 많은 외국 동전이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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