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22 23:08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으로 감옥에 있다가 1997년 풀려나게 됐을 때 교도소 정문 앞에서 기자들이 "감옥 생활은 어땠는가" 물었다. "이 한마디만 하지요. 여러분은 절대 가지 마세요."전씨는 대통령 퇴임 후 해외망명설까지 나돌자 "국민 여러분이 가라는 곳이면 조국을 떠나는 것이 아닌 한 어디라도 가 속죄하겠다"고 했었다. 그랬던 전씨도 감옥 생활만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문익환 목사도 1989년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평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베이징에서 "솔직히 감옥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재야 운동을 하다 이미 세 차례에 걸쳐 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문씨였다. 자기 소신을 위해 고난을 마다치 않겠다는 사람에게나, 호의호식(好衣好食) 위해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게나 감옥행(行)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다른 것 같다. 그는 엊그제 서울대 강연에서 "역사의 현장 속에 있으면 훨씬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분 감옥에 꼭 한 번 가보세요"라고 했다. 그는 "한국 역사의 많은 비극을 누가 만들었나. (누가) 박해하고 처형하고 했나. 여러분의 선배들이 했다"며 "나는 감옥 간 것을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시장은 작년 동국대 특강에서도 "감옥에서 읽었던 책만큼 감동적으로 읽은 것은 없다"며 "여러분은 감옥에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고 했었다.
▶박 시장은 1975년 서울대 1학년 때 우연히 시위에 참가했다가 4개월 경찰서 유치장·구치소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저녁에 신촌에서 있을 미팅 시각을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잡지를 읽다가 창을 통해 시위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짧은 감옥 생활이었지만 강도·살인·소매치기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들과 한방에 있으며 그들이 뜻밖에 착한 아이들이고, 진짜 죄인들은 안 잡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앎의 세계로 진입했고 '성경'을 다 읽으며 세상을 뿌리째 바꾸려 했던 혁명가 예수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유신체제와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치며 많은 사람이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감옥 생활을 했다. 우리가 오늘 누리는 민주주의는 그들의 고초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다고 해서 1970~80년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학생들한테 '꼭 한 번 감옥을 가야만' 역사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보다는 젊은이들이 다시는 감옥을 안 가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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