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19 22:04
1923년부터 1950년까지 한국 시에서 가장 많이 쓴 명사는 '밤'이었다. 네 해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시 1만5000여 편을 조사했더니 '밤'이 3090차례 나왔다. 김소월은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며는'이라며 떠난 '님'을 그리워했다. 정지용은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이라며 죽은 아들 생각에 잠겼다. 윤동주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며 일제(日帝) 탄압에 신음했다.
▶밤에 이어 애용된 시어(詩語)는 소리·때(時)·마음·하늘·길·사람 순서였다. '사랑'은 59위에 그쳤다. '님'이나 '당신'도 60위권에 머물렀다. 1950년대 이후 시어에 관한 조사는 없지만 '사랑'을 뺀 채 요즘 서정시를 얘기할 순 없다. 100만부 넘게 팔린 시집 '접시꽃 당신'이나 '홀로서기'도 사랑을 노래했다.
▶밤에 이어 애용된 시어(詩語)는 소리·때(時)·마음·하늘·길·사람 순서였다. '사랑'은 59위에 그쳤다. '님'이나 '당신'도 60위권에 머물렀다. 1950년대 이후 시어에 관한 조사는 없지만 '사랑'을 뺀 채 요즘 서정시를 얘기할 순 없다. 100만부 넘게 팔린 시집 '접시꽃 당신'이나 '홀로서기'도 사랑을 노래했다.
▶4·19 정신을 상징하는 시인 김수영(1921~1968)이 가장 즐겨 쓴 시어도 '사랑'이었다고 한다. 고려대 현대시연구회가 김수영의 시 176편에 나타난 어휘를 모두 살펴보고 집계한 결과다. 현대시연구회가 엊그제 '김수영 사전'을 펴냈다. '사랑'을 찾으면 그 말이 들어간 모든 시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시어 사전이다. 김수영은 시 '사랑의 변주곡'에서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노래했다. 그는 시 열여섯 편에서 마흔여덟 차례에 걸쳐 사랑을 읊었다.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며 문학의 현실 참여를 외친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서 사랑은 연애 감정보다는 시민 연대의식에 더 가까웠다. 좌절한 4·19 혁명을 회상하며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고도 했다. 김수영은 여섯 살 아래 아내와 연애결혼을 했지만 순탄치 않은 사랑을 겪어야 했다. 결혼한 해 6·25가 터져 북한군에 끌려간 김수영은 포로가 돼 거제도 수용소에서 두 해를 보냈다. 그 사이 남편의 생사를 몰랐던 아내가 우여곡절 끝에 다른 남자와 살게 됐다.
▶반공포로로 풀려난 김수영은 시 '너를 잃고'를 써서 괴로움을 토해냈다. 그는 2년 동안 아내를 자주 찾아가 설득하며 다시 결합하자고 호소했다. 처음엔 김수영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젓던 아내도 더 외면하지 못해 다시 합쳤다. 그는 아내와 함께 밤새 시를 얘기하길 좋아했다. 아내를 위해 "여보, 흔들리는 비애를 아느냐"라는 시 '비'도 썼다. 1968년 시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아내는 그가 즐겨 읽던 책을 관에 넣어줬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었다. 시인의 영혼이 '김수영 사전'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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