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유엔묘지의 캐나다 형제

yellowday 2012. 4. 20. 17:19

입력 : 2012.04.18 22:12

미 육군 로버트 맥거번 중위는 1951년 경기도 수원 전투에서 눈 덮인 바위산을 기어올랐다. 고지를 70m쯤 남겨놓고 적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그는 쏟아지는 적탄에 가슴을 맞고 숨을 거뒀다. 그 열하루 뒤 동생 제롬 맥거번 소위도 경기도 금왕리 442번 고지 전투에서 하얀 눈밭 위에 피를 뿌렸다. 그해 11월 워싱턴 알링턴국립묘지에 형제가 묻히던 날 워싱턴포스트 제목은 '평생을 함께 자란 맥거번 형제 나란히 잠들다'였다.

▶베니 로저스 상병은 북한에서 유해가 발굴돼 작년 11월 미국 텍사스주에 안장됐다. 그러면서 그의 어머니가 보관했던 60년 전 편지가 공개됐다. 갓 스무 살 병사는 6·25 전쟁터에서 편지에 이렇게 썼다. "엄마, 나 하사로 진급해요. 여기는 새로 판 참호 냄새가 나요." 그는 편지를 부친 사흘 뒤 평북 운산전투에서 숨을 거뒀다. 아들이 실종된 줄만 알았던 엄마는 죽는 날까지 아들이 살아올 거라고 믿다 떠났다.

▶숱한 젊음이, 귀한 자식이, 때론 피를 나눈 형제가 6·25의 참화에 휩싸인 이역만리 땅까지 와서 싸우고, 스러져 갔다. 6·25 전쟁 중에 미국 가수 엘튼 브리트가 부른 '무명 용사(The Unknown Soldier)'는 지금도 살아 숨쉬듯 가슴을 울린다. "내 무덤은 그대가 지키지 못한 약속/ 무덤 위 화환은 고통의 리본/ 내 비록 눈을 감았지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까지 절대로 잠들지 못하리."

캐나다 청년 아치볼드 허시가 1950년 9월 입대해 한국에 왔다. 형 조지프는 동생이 못내 걱정스러워 이듬해 1월 뒤따라 왔다. 전쟁통에 형제는 만나지 못했다. 1951년 10월 동생은 총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형을 우연히 발견했다. 형은 동생 품에서 숨을 거뒀다. 형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묻혔고 동생은 형이 사둔 파란색 실크 파자마를 들고 귀국했다. 어머니에게 주려던 선물이었다. 동생은 작년 6월 지병으로 숨지며 "형 곁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형제는 25일 유엔기념공원에 나란히 묻힌다.

▶그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캐나다 허시 형제의 어머니는 아들이 마련했던 파자마를 죽는 순간까지 놓지 못했다. 재작년엔 호주의 6·25 미망인이 유엔기념공원 남편 곁에 묻혔다. 작년에야 고향 텍사스에 묻힌 베니 로저스 상병의 조카와 손자들은 지금도 식탁에서 아이들에게 '베니 삼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름도 낯선 동아시아 외진 나라에 젊음과 피를 바쳤던 전쟁은 여전히 세계 여기저기서 망각의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우리 어린 학생들은 6·25가 일어난 해도 모르는 지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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