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파리의 아시아인

yellowday 2012. 4. 27. 15:13

입력 : 2012.04.25 23:04

2002년 중국 출신 작가 프랑수아 쳉이 프랑스 한림원 정회원이 됐다. 1635년 설립 이래 처음 종신회원에 뽑힌 아시아인이다. 열아홉 살에 유학생으로 온 쳉은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중국 문화를 알렸다. 쳉은 "내가 회원이 되자 시라크 대통령이 '프랑스의 영광'이라고 했는데 파리에 사는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의 영광'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이 모든 아시아인의 행복인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프랑스 인구 6000만명 중에 아시아계는 840만명에 그친다. 이민 1세대는 궂은 일을 하며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 그러나 2세·3세는 뼛속까지 프랑스인으로 자랐고 학력도 높아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아시아계 유권자가 100만명을 넘어서자 정당들은 젊은 아시아계 정치지망생을 끌어들였다. 2009년엔 베트남 출신 리엠 호앙 엔곡이 사회당의 유럽의회 의원이 됐다. 6월 총선을 앞두고는 보트 피플이었던 첸바 티에우가 여당의 파리 지역구 후보로 공천됐다.

▶녹색당 상원의원 장 뱅상 플라세는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일곱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됐다. 소년은 석 달 만에 불어를 깨쳐 양부모를 놀라게 했다. 그는 회계사로 일하다 녹색당에 들어가 원내대표에 올랐다. 녹색당은 다음 달 6일 대선 2차 투표에서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를 지지하기로 했다. 엊그제 플라세는 "사회당이 이기면 녹색당도 정부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산장관이 꿈"이라고 말해왔다.

▶컴퓨터에 어두워 '디지털 백치(白痴)'로 불리는 올랑드 후보 캠프에선 플뢰르 펠르랭 IT정책 보좌관이 디지털 선거운동을 지휘한다. 그녀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난 지 여섯 달 만에 입양됐다. 교육을 못 받은 양어머니의 한(恨)을 대신 풀려고 억척스레 공부해 열여섯 살에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에 합격했다. 최고 엘리트만 가는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감사원에서 일했다. 사회당에선 "올랑드가 당선되면 그녀가 디지털 경제장관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2009년 독일에선 베트남 입양아 출신 서른여섯 살 필립 뢰슬러가 보건장관이 됐다. 두 해 뒤엔 자유민주당 대표와 경제장관에 올랐다. 그는 "독일은 미국보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에 더 좋은 나라"라고 고마워했다. 프랑스 상원의원 플라세는 "나를 입양해준 조국 프랑스를 사랑하고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펠르랭 보좌관은 다문화사회 지도자 모임 '21세기 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 앞에 장관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이 일으키는 '다문화' 바람이 우리 사회까지 불어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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