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검사와 경찰관

yellowday 2012. 3. 16. 18:44

입력 : 2012.03.14 23:31 | 수정 : 2012.03.15 02:06

2005년 어느 날 밤 강릉경찰서 야간 상황실장을 맡은 장모 경정에게 강릉지청 검사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피의자를 긴급 체포했으니 강릉서로 데려가 유치장에 가두라"는 전화였다. 장 경정은 "정식 공문을 보내주면 내부 결재를 거쳐 피의자 호송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버텼다. 한 달쯤 뒤 장 경정은 강릉지청으로부터 같은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다시 "검사가 직접 수사해 체포한 피의자를 유치장으로 데려가라는 지시는 검사의 수사지휘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장 경정은 직무유기죄로 기소돼 징역 4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검사는 수사의 주재자(主宰者)로서 경찰과 상호 협력이 아닌 상하 지휘관계이기 때문에 검사 지휘가 적법하다는 판결이었다. 검찰의 수사 지휘는 경찰이 법 절차를 지키지 않아 인권을 침해하거나 유죄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빠뜨리지 않게 하려는 제도다. 그러나 경찰은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내세워 경찰을 머슴 다루듯 한다고 불만이 크다. 검찰에 보낸 구속영장 청구 서류에 '영장 청구 바람'이라고 평어체를 쓰면 기각하고 '청구 바랍니다'라고 존댓말을 쓰면 받아주는 검사도 있다고 말한다.

▶검찰은 그건 20~30년 전 일이라고 반박한다. 그런데도 경찰대 같은 데서 '경찰은 검찰의 노예'라고 선동해 검·경 대립을 부채질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예전엔 검사가 경찰서 유치장에 야간 감찰을 나오면 서장이나 수사과장이 정문까지 나와 영접했다. 검사는 수사과장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이런저런 기록을 가져오라고 했다. 요즘엔 그런 일은 상상도 못한다.

경남 밀양경찰서 경찰관이 검사가 부당한 수사 지휘를 하고 욕설까지 했다고 검사를 고소했다. 이 사건을 두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까지 나서 기 싸움을 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검찰은 문제 경찰을 잡아들이고 경찰은 문제 검사를 잡아들이면 국민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창원지검에 지시해 "경찰관이 엉뚱한 트집을 잡아 검사의 정당한 수사지휘권을 거부하고 있다"고 발표하도록 했다.

▶조현오 청장의 말은 표현이 거칠기는 하지만 검·경 간 상호 견제를 강조한 점에서 수긍할 만하다. 경찰에게도 판·검사 수사권이 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호 견제라는 명분 뒤에 검사의 정당한 수사지휘권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곤란하다. 수사 지휘가 불법·부당하게 여겨진다고 냅다 검사 고소부터 하고 나설 일은 아닌 것 같다. 형사소송법에는 재지휘 건의, 경찰서장 의견 제시 같은 이의(異議) 절차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쪽이 지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