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사투리 교정' 학원

yellowday 2012. 3. 14. 06:35

입력 : 2012.03.12 23:36

소년의 고향은 경북 점촌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시골이었다. 그가 중학생이 돼 점촌 읍내에 나와 자취를 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어머니가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어 쌀이며 속세짠지(고들빼기), 골곰짠지(무말랭이) 같은 걸 잔뜩 싸들고 자취방을 찾았다. 아들을 보고 하신 첫마디가 "때를 그러면 안데는 기라. 어째든지 때맞차 먹어." 소년은 어머니가 또 잔소리하나 싶어 싫었다고 한다.

▶그가 어른이 돼 가정을 이룬 뒤 어머니가 아들 생일을 보러 다녀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니 방에 흰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안에는 돈 10만원과 함께 "때 그러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라―엄마"라고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달 전 '월간 에세이'에 어느 독자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글이다. 거기서 "때를 그러면 안데는 기라"를 "끼니를 거르면 안 된단다"고 바꾸면 점촌 시골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이처럼 절절히 전해질 수 있을까. 사투리에는 고향의 흙냄새와 함께 그 땅에서 수천년 발 디디고 살아온 어머니들의 체취가 배 있다.

▶사투리가 주는 깨달음 중의 하나는 세상에서 내가 쓰는 말만 옳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 '고구마'라 하는 것을 호남에서는 '감자'라고 부른다. 가을이면 빨갛게 피는 맨드라미가 대구 근방에서는 봄에 피는 민들레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부추는 지방에 따라 분추·솔·졸·소불·소풀·정구지를 비롯해 50가지가 넘는다.

▶후난(湖南)성 출신 마오쩌둥이 1949년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다"고 했을 때 군중 가운데 이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국토가 광대한 중국은 건국 후 사투리를 없애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그러나 최근 상하이와 샤먼(廈門) 시는 초·중등학교 정규 교과과정에서 자기 지방 말을 가르치기로 했다. 사투리는 그 자체로 특수한 문화적 가치가 있다. 두 도시는 사투리를 중심으로 한 향토문화가 발전해야 나라 문화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재작년 광둥(廣東)성에선 TV 뉴스를 표준어로 바꾸려는 움직임에 맞서 광둥어(語)를 지키려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강남 스피치학원에서 지방 출신 취업 준비생들에게 사투리를 교정(矯正)해주는 강좌가 뜨고 있다고 한다. 학원 상술을 탓하기에 앞서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사투리를 없애야 취직이 잘 된다고 믿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매출 100대 기업 CEO 중에는 사투리를 쓰는 지방 출신이 절반을 넘는다. 젊은이들이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책임을 엉뚱하게 사투리가 뒤집어쓰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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