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13 23:00 | 수정 : 2012.03.14 13:55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실험장소로 선전(深圳)경제특구를 만들었다. 덩은 그중에 핵심인 서커우(蛇口) 공업구를 개혁 전도사 위안겅(袁庚)에게 맡겼다. 1982년 위안겅은 '시간은 곧 돈이요, 효율은 곧 생명(時間就是金錢 效率就是生命)'이라는 대형 광고판을 서커우에 내걸었다. 당시 중국인들에겐 충격이었다. 그들 눈엔 너무 속물적이었다. 계획경제에 젖어 있던 관리들은 "사회주의 건물에 자본주의 페인트를 칠하느냐"며 반발했다.
▶'시간은 곧 돈'이라는 말은 18세기 벤저민 프랭클린이 처음 썼고, 미국식 문화와 생각을 상징하는 명제가 됐다. 위안겅은 '중국식 속도전'을 펼쳐 언젠가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뜻으로 이 격언을 빌려 썼다. 1984년 덩샤오핑이 서커우에 오자 위안겅은 길목마다 이 표어를 세워놓았다. 적지 않은 반발과 논쟁이 있었지만 덩은 "위안겅이 옳다"고 치켜세웠다. '선전속도(深圳速度)'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53층 선전국제무역빌딩은 사흘에 한 층씩 지어 완공됐다.
▶'시간은 곧 돈'이라는 말은 18세기 벤저민 프랭클린이 처음 썼고, 미국식 문화와 생각을 상징하는 명제가 됐다. 위안겅은 '중국식 속도전'을 펼쳐 언젠가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뜻으로 이 격언을 빌려 썼다. 1984년 덩샤오핑이 서커우에 오자 위안겅은 길목마다 이 표어를 세워놓았다. 적지 않은 반발과 논쟁이 있었지만 덩은 "위안겅이 옳다"고 치켜세웠다. '선전속도(深圳速度)'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53층 선전국제무역빌딩은 사흘에 한 층씩 지어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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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속도'라는 말이 유행하고 나서 '상하이속도'라는 말도 나왔다. 100층 가까운 고층건물이나 대형 다리도 착공에서 준공까지 1년이면 마무리되는 놀라운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작년 7월 원저우(溫州) 고속철 추돌사고로 40명이 숨지는 참사가 터지자 '중국식 속도전'에도 브레이크가 걸리는 듯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철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야 한다"며 밀어붙이다 기어이 속도위반 딱지가 날아든 셈이었다.
▶개혁·개방 30년을 맞은 2008년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는 '30년 기적을 일궈낸 걸출 인물 30명'을 발표했다. '선전속도'의 주인공 위안겅도 포함됐다. 중국 사람들은 '천천히'를 좋아했다. '느리게'라는 뜻의 '만만디(慢慢的)', '천천히 먹는다'는 '만만츠(慢慢吃)', '천천히 간다'는 '만조우(慢走)'를 늘 말했다. 요즘엔 정반대로 '빨리빨리'라는 뜻의 '콰이콰이디(快快的)'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우리도 겪었듯 압축 성장의 기적이 끝나면 반드시 뒤늦은 청구서를 받게 된다.
▶개혁·개방 30년을 맞은 2008년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는 '30년 기적을 일궈낸 걸출 인물 30명'을 발표했다. '선전속도'의 주인공 위안겅도 포함됐다. 중국 사람들은 '천천히'를 좋아했다. '느리게'라는 뜻의 '만만디(慢慢的)', '천천히 먹는다'는 '만만츠(慢慢吃)', '천천히 간다'는 '만조우(慢走)'를 늘 말했다. 요즘엔 정반대로 '빨리빨리'라는 뜻의 '콰이콰이디(快快的)'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우리도 겪었듯 압축 성장의 기적이 끝나면 반드시 뒤늦은 청구서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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