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피로사회'

yellowday 2012. 3. 10. 04:48

 

입력 : 2012.03.09 23:02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는 30년 넘게 외판원으로 일해 중산층이 된다. 그는 대공황의 급류에 휩쓸려 회사에서 해고되자 방황하다가 차를 과속으로 몰아 자살한다. 가족에겐 생명보험금이 돌아간다. 아내는 "빚을 갚았지만 이 집에서 살 사람이 없다"고 절규한다.

▶우리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2193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500시간이나 많다. 2006년 이후 5년 사이 1574명이 과로로 죽었다. 남자 과로사는 임원과 관리직이 25%로 가장 많았고, 여자는 단순노무직이 30%를 차지했다. 잘나가는 듯해 보이는 고위직의 한 단면(斷面)이 엿보이기도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장인들 사이에 '샐러던트(saladent)'라는 신조어가 나돌았다. 직장에 나가 월급(salary)을 받는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학생(student)처럼 공부하는 샐러리맨이라는 뜻이다. 샐러리맨들은 어학원에 다니면서 외국어를 습득해 자기 경쟁력을 보강하거나 실직(失職)과 이직(離職)에 대비해 공인 자격증이란 구명보트를 미리 예약하려 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책 '피로사회'에서 "현대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노예처럼 과잉 노동으로 몰고 가는 자기 착취 시대"라고 했다. 근대 규율사회에선 국가와 자본이 "놀지 마, 일해"라고 명령했다. 그에 비해 포스트모던 사회에선 노동자들이 '넌 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성공의 신기루에 홀려 죽도록 일하다 피로에 지쳐 나자빠진 끝에 우울증과 자살의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는 얘기다.

▶가수 강산에는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남의 잣대에 맞춘 성공을 진짜 성공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평생 피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까지 피곤하게 만든다. 한 가지 잣대로만 인간을 평가하고 목소리 큰 사람일수록 대접받는 사회는 '피로사회'로 흘러간다. 자신의 잣대로 자신의 성공을 재는 사람이 모인 사회에서만 개성과 차이가 존중받고 자기 보폭(步幅)을 지키며 살 수 있다. 프로축구는 죽자 살자는 기세가 부딪치는 비정한 승부 세계다. 그런데도 그 경쟁 속에 있는 선수도, 지켜보는 관중도 즐겁다. 남의 팀과 벌이는 경쟁과 자기 팀 안에서의 협력이 정서의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피로사회' 탈출의 힌트가 여기에 담겨 있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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